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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Dec 11. 2024

95. 움직여야 사느니

- 기회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니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내 마음대로 풀리는 일이 많지도 않았지만

인간관계는 더욱 그랬다.


혹자는 나에게 ‘단정지으려 한다.‘며

열어 놓을 것을 이야기했지만

상대방이 닫혀 있을 때는 내가 연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시간을 견디다가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면

그 때 다가갈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론’이지

온갖 종류의 선입견, 경쟁, 끌어내리기가 존재하는

조직 생활에서

‘한 번 적은 영원힌 적‘이 되곤 했을 뿐이었다.



변수는 없다.



자기 틀에서 한 발짝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곧잘 단합이 된다.

나는 그들과 ‘타협‘을 시도했었는데

내게 알량한 ‘배경’이나 ‘권한‘이 있었을 때는

그나마 그들이 듣는 시늉을 했고

그런 것이 사라지자

도깨비방망이가 갑자기 듣지 않듯이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자기의 틀‘이란 것이 나에게는 없는지 자문해 봤다.

분명히 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 그것을 앞세운다는 것은

좀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

아니, 없어야 했다.


긴 인생에서 어차피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었고

직장생활이 몇 년씩 쌓여 가도 한 두 명 연락하고

지내기가 점점 쉽지 않아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 가치관이란 것이 드러나고

심지어 그것들끼리 ‘충돌’한다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했다.

그런데 또 실전에서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났다.


‘잘 지낸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고민조차 없어 보였다.

사람을 도구나 물건처럼

자기 목적을 위해 쓰고 버리는 일도 자행됐다.

그리고 직장에서 따돌려지기까지

내가 가장 배격하고 싶었던 모습은 바로

수근거림’이었고 ‘편가르기‘와

‘함부로 말하기‘였다.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을 평가했고

도마 위에 올렸으며

사람을 거기서 난도질했다.


자기들끼리 ‘(직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자처하거나

무슨무슨 위원회에 들어와서 완장을 차고

큰 소리부터 냈다.


나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외롭게, 자유로이



문득 한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올 무렵

(말로만 듣던) ‘옆구리가 시렸다.’


절친에게 남친이 생기고

그 둘이 하루종일 전화하고 붙어지내는 걸

봐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인가?‘ 하는 생각에

‘야 성대리! 너 왜 그러고 살아?’ 힐끗 봤다, 거울을.


놀라운 것은 왕따 사건 이후에

내가 사람들과의 불요불급한 접촉, 대화를 끊고

혼자 지내려 노력하면서부터는

차라리 외로운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가


정말, 연인이 생긴 주변으로부터 소외를 느꼈을까?


작용을 했겠지... 늘 내 옆일 줄 알았던 사람들이니까.

어떤 이유로건 하나 둘

사람이 돌아설 때, 멀어질 때

‘내 잘못은 없었나?‘ 또 심각해졌다.


나는 외로워 죽겠는데 이번에는

연애 행각이 깊어가던 주변에서

어라, 자기 고민을 들어달랜다.

뭐냐니까는,

‘이 좋은 사람하고 헤어지게 될까 봐,

상대방이 떠날까 봐’ 걱정이란다,(그래 나를 죽여라.)


나의 카운슬링 답은 : “ 떠났을 때 뒤돌아 보이지 않고 갈 수 있으려면 상대보다 한 뼘 더

사랑해, 많이 사랑하고 원 없이 만나.” 

(그러고 나면 헤어져도 네 삶 살아.) 였다.


외로움의 다른 이름은 ‘자유’이다.

왕따가 된 나에겐

누군가가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없다.

하루종일 다니고 또 다녀도

시간이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한동안 물론,

외롭고 외로워서 보니까 옆구리가 시렸고

외롭다 보니 자꾸 힘이 빠져서

매가리가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나의 특기 시전에 돌입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전환!‘


외로워하고 계신 분 있다면 자유롭다고 생각을 바꾸시면 됩니다. 내 마음대로 가고 내 마음에 따를 권리에 연동되는 그 ‘자유’요!


누가 뭐라든

누가 나로 하여금 외로움에 샤워를 시켰든

어쩌겄어요, 당장은 살아야 하잖아요.


유신 시대 저 70년대에 계엄령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맘대로 대통령이 앗아갔는데

우린, 외로운 자들은요

그 두 가지가 한정 없이 많아요!


외로우니까 오늘부터 우리, 자유로운 겁니다.

맘 먹은 일을 하나씩 해결해 가는 우리가 되어 봅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랬습니다.

움직여야 살아요

외로워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푹 빠져서 즐겨요.

쉿, 기회는 또 와요.. 우린 그걸 잡을 준비를 해요


자유롭기만 하면 헤쳐 나갈 수 있어요

‘모든 날, 모든 어려움’을


실제로 저는 왕따당해서 푹 앓고

홀로 생활하는 지금까지가

제 인생에서 젤로 빨리

힘이 붙는 걸 느꼈다니까요!

하긴 바닥 찍으면 많이 튀어오르는 건 사실이에요

세게 찍고 다 부서졌으니까 그럴 만도요


그러니 혼자 있는 걸,

즉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걸어가는 걸,

감추지 말고 당당해졌으면 해요.

‘외로워서 죽기‘,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pIlRUbDpEQ&pp=ygUT7KCV7Iq57ZmYIOq3uOuCoOuTpA%3D%3D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눈물이 흘렀던)그 날들: 노래 정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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