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멋쟁이가 되고 싶다 - 메이크업
추구하는 나의 외모와 내면의 모습, 예술적 취향, 여행의 취향, 문화를 소비하는 취향, 물건을 소비하는 취향 모두 나만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있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내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난 어릴 적부터 외모를 가꾸는 데에 관심이 꽤 많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여드름이 많이 나기도 했고, 더 어릴 때로 이야기하자면 아토피로 매우 고생을 했던지라, 피부 관리는 나에게 옵션이 아니고 필수였다. 피부가 건조해지면 삶의 질이 꼬꾸라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토피가 심했다. 눈 주변은 피부가 빨개서 어른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엄마 화장품을 발랐느냐고 묻기도 했고, 입술은 항상 창백하고 건조했으며, 가려워서 긁느라고 무엇에 집중하기 힘들던 어린 시절, 아토피는 삶의 질을 참 많이도 망가뜨렸다. 건조해서 긁고, 긁어서 상처가 나고, 또 연고를 바르고, 긁느라고 잠을 못 자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그러다 보니 로션 하나를 쓰더라도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에게 잘 맞고 만족할만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늘 과제였다. 지금이야 화장품 유목민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지만, 나는 내 돈으로 직접 화장품을 사기 시작한 20살부터 유목민을 자처해서 살아왔다. 20살이 되고 화장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촉촉하고, 그렇게 보이는 화장을 하기 위해 신경 써왔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피부 조건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나 취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런 연유로 단순히 얼굴이 이뻐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나만의 미적 취향을 찾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전업주부가 되고 아이만을 키우면서 살다 보니 화장을 여유롭게 할 상황도, 스킨케어를 할 에너지도 나에게 남지 않았다. 밤마다 아이를 재우다가 아이보다 먼저 잠드는 날들도 많았고, 아이를 재워놓고 나와 조용히 설거지하는 날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 스킨케어나 좋은 화장품을 테스트해 보고 구매하는 것들은 모두 사치로 여겨졌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아이들의 바디로션을 얼굴에 대충 바르며,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옷도 배를 가리기 위한 목적의 디자인들로만 입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좀 멋을 부리고 싶어졌다.
메이크업하는 것을 좋아했다.
과거형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관심이 많았다. 아니, 관심은 계속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내 신세 한탄만 하며 가꾸지 않았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그저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것만 겨우 신경 쓰며 지낸 엄마로의 삶이 생각보다 길었다. 전업주부라서 꾸미고 나갈 일도 없고,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쇼핑을 하거나 혼자 돌아다니지도 않는 탓에 꾸미고 싶어도 꾸밀 일이 없어서 슬프다고만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얼굴이 웜톤인 줄 알았다. 노란끼가 많아서 그랬는데, 웜톤에 맞는 립제품을 바르면 얼굴이 더 누래보이는 효과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핸드폰으로 가벼운 퍼스널컬러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는 쿨톤이었다. 이것 역시 신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쿨톤계열의 립제품을 발랐더니 주변에서 더 화사해 보인 다고 했다. 이렇게 뭘 하나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알게 되면 굉장한 정보를 획득한 것처럼 기쁘다. 이후로 웜톤이었던 옷들은 동생에게 주고, 쿨톤 계열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전보다 나아 보이는 건 나 혼자만의 기분 탓은 아니겠지.
이제 예전에 스모키 화장을 하던 것만큼 열심히 메이크업을 하지는 않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선크림까지 바르고 있는 날들도 생겼다. 외출할 일 없지만 선크림을 발라놓으면 나를 더 아끼는 기분이 들고, 갑작스럽게 나갈 일이 생겨도 후줄근하게 나가지 않게 된다. 스스로를 후줄근하게 꾸미고선 내 상황을 하소연하던 날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를 가꾸고, 좀 상큼한 기분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봤자 메이크업은 10분 15분이면 끝나고, 머리도 관리하는 것이 귀찮아서 십 년째 쇼트커트이지만, 내 마음에 새로운 마음이 생긴 것 자체가 즐겁다.
이제는 외모를 좀 가꾸어보려고 한다.
유명하다는 리들샷도 쓰는 중이고, 맨날 뜯던 손에도 이제는 좀 깔끔해 보이게 신경 쓰고 있다. 손톱이 약해서 젤네일은 못하지만, 허옇게 일어나는 거스러미는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피부과에서 시술받을 여유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홈케어는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가꾸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를 가꾸고 싶다는 이야기다. 귀걸이나 시계는 없어도, 우아해 보이고 센스 있어 보일 정도는 신경 쓰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모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어 가는 것이 재미있다. 한동안은 내면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지 외모를 가꾸는 것은 모두 다 편견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거울을 봤을 때, 못나 보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정도로는 가꾸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아하게 늙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나를 가꾸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나의 마음을 정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