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념테이프 May 22. 2024

나만의 취향을 갖는다는 것 vol.2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어릴 때 집 안 풍경을 떠올리면,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다. 주말이면 아빠는 아침부터 본인의 취향의 음악을 틀어놓으셨다. 올드팝이나 클래식이었다. 엄마는 저녁이 되면 항상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틀어놓으셨다. 엄마랑 거실에 누워 음악을 들으면서 집안 거실전체를 노을이 붉게 물들이면, 차갑고도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음악에 빠져들곤 했다. 그때는 너무 어릴 때여서 음악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분위기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의 음악적 취향은 내가 일부러 어떤 평가를 받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어릴 때부터 듣던 음악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느낌이 많이 나는 대중가요를 들으면 나도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물론 아이돌 노래들 중에서도 좋아하고 자주 듣는 노래들이 있다. 하지만, 차트에서 순위를 지키기 위해, 강한 임팩트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여겨지는 그런 노래를 들으면 나의 취향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수치심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 역시 1세대 아이돌 노래를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그때의 노래와 요즘의 대중가요는 꽤나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신유행음악이나 랭킹에 올라와있는 음악들의 대부분이 항상 내 귀에는  달라붙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수의 음반을 구입한 건 6학년이었나, 5학년이었나. 신승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록되었던 앨범과 그다음 해 김건모의 3집 카세트테이프이었다. 그리고 공테이프를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고 라디오를 녹음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솔리드'의 2집이었다. 신승훈과 김건모는 그때 당시 그들의 음악을 안 듣는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가 있었고, 솔리드는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맨살에 입은 정장 조끼에 까만 지팡이가 처음부터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아니었던 것 같고, 그들의 음악이 나를 알앤비에 입문시킨 것 같다. 사실 대부분 잘생긴 래퍼를 좋아했지만, 나는 항상 리드보컬을 좋아했다. 핑클에서도, S.E.S에서도 그룹에서는 항상 리드보컬이 항상 제일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솔리드의 사서함에 전화를 걸어 그들의 방송 스케줄을 확인하면, 그들의 라디오를 시간 맞춰 들으면서 공테잎에 녹음을 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우리 반에서 솔리드를 좋아하는 친구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카세트테이프가 CD로 전환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는 CD PLAYER를 구입했고 좋아하는 가수들의 앨범을 용돈 모아 모으기 시작했다.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디바들을 시작으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음악을 들으면 따라서 흥얼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먼저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듣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크리스티나가 나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TLC의 음악도 들었다. 국내 아이돌의 음악도 그때는 정말 많이 들었다. 아이돌 1세대들의 음반은 나올 때마다 바로 구입해서 주야장천 들었다. 학원을 오갈 때에도 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면서 듣고, 시험이 끝나서 친구들과 다 같이 노래방에 가면 4시간 동안 친구와 역할을 맡아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에는 시험 끝나고 노래방에 가면 평일 오전이나 점심 직후정도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서 사장님이 두세 시간씩 서비스를 넣어주셔서 아이들이 지쳐 잠들기도 했다. 친구들이 잠들어도 집에 가자고는 하지 않았고, 나는 나와 제일 친한 친구 둘이서 정말 부를 수 있는 노래는 거의 다 부르고 나온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 음악을 듣는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누군가와 친해지려 할 때,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이 상대방의 음악 취향이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추천받아 듣게 된 음악으로 내 취향이 더 확장되었다. Urbano, Antonio Carlos Jobim, Sergio Mendes, Lisa Ono와 같은 보사노바와 재즈부터 Daft Punk, Jamiroquai 같은 일렉트로닉과 애시드 재즈, 국내의 Roller Coaster, Humming Urban Stereo, Casker도 많이 들었다. 슬프고 오열하는 국내 발라드는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R&B, Soul을 엄청 들었는데, 취향이 확장되면서 언제부턴가 애드립이 많은 음악이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창피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의 음악취향이 그래도 좀 고급지다거나 수준이 있다고 여기던 시간들이 있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음악을 듣는다거나, 아티스트에 대해서 흥미로운 스토리나 배경을 알게 되면 그렇게 기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이돌 음악이라면 다 상업적이고 유행 따라서 만들어진다고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팬데믹이 터졌을 때 오히려 가장 위로받은 음악은 아이돌 음악이었다. 그 이후로 편견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국내의 다른 아이돌 음악도 이제는 들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내가 일부러 찾아서 듣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에 아이들도 커가면서 나보다 아이돌 노래를 더 잘 알게 되면서 같이 듣고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아이돌 노래가 가장 흥미롭고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 중 하나로 기억에 남겠지. 나의 음악 취향이 괜찮다고 스스로 자만했던 내가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의 취향을 갖는다는 것 vol.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