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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Dec 18. 2023

아들과 축구공

8살 아들의 축구 사랑

  

  우리 집 8살 꼬마는 축구에 빠져있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 보면 거의 선수 급이다. 학교생활을 제외하면 나머지 생활은 거의 축구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추워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지난달까지는 집에 오자마자 공을 들고 나가서 세 시간씩 축구를 해야만 돌아왔다. 한여름의 폭염도 이 아이를 막을 순 없었다.


   아이는 6살부터 다니던 축구를 7살 가을에 갑자기 힘들다며 쉬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줄넘기와 수영에 축구까지 했으니 힘들만도 했다. 그래도 그 중에 축구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 축구 선생님을 비롯해서 주변 모두가 큰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정작 본인은 미련이 남지 않은 눈치였다. 아이가 축구를 쉬는 4개월 동안 친한 친구들은 대표팀으로 영입이 되었고 그 사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표팀 친구들이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축구를 하며 붙어 다니는 것을 보아서였을까. 그들만의 유대감을 아이도 느낀 것 같다. 결국 아이는 다시 축구 센터에 등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축구를 다시 시작하고 나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어떤 친구가 어떤 실력이 좋은지 나에게 와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줬다. 친구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스스로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 같다. 

  스스로 결심을 해서인지 아이는 시간만 나면 혼자서라도 축구화로 갈아 신고 공을 챙겨 집 앞 공터에 나갔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달리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친구들이 학원에 있을 시간동안 간단한 공부를 얼른 끝내고 부랴부랴 축구를 하러 나갔다. 혼자 연습하다가, 친구들이 학원 버스에서 내리면 그 때부터 같이 축구를 또 하는 패턴이었다. 몰입인지 집착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친구 엄마들은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했다.


  아이는 축구에 무섭게 빠지기 시작하더니 그의 8세 인생을 축구로 채워갈 모양이다. 길을 걸어갈 때에는 가상의 공을 상상하면서 지그재그로 간다. 드리블 연습을 하는 중이란다.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아이의 눈빛이 꽤나 매섭게 반짝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저러다가 길에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나는 잔소리를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몸에는 항상 공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보이는 공이 거나, 안 보이는 공이 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언제나 함께다.      


  지난달에는 상암동에서 국가대표 축구팀의 평가전이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아들에게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하기로 했다. 남편은 축구에 흠뻑 빠진 아이에게 이처럼 좋은 선물이 없을 것 같다며 점수 딸 기회를 만들려는 것 같았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직관하게되다니.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 예매시작 한 시간 전부터 우리는 긴장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앉아 바뀌지 않는 홈페이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힘들게 티켓팅을 성공하자마자 우리는 대표팀 축구가 4강에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서 손을 맞잡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이는 곧 스스로를 진정시키더니 바로 인터넷에 국가대표 선수단을 검색했다. 선수들의 이름과 등 번호 뿐만 아니라 현재 소속되어있는 구단과 키, 몸무게까지 그 많은 정보를 외우기에 돌입했다. 아이 핸드폰의 메모장에는 그렇게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되었다. 메모장에 메모 할 생각은 또 어떻게 한건지. 평가전 당일, 우리는 상암동까지 가는데에 길이 막혀 4시간이나 걸렸다. 하지만 아이는 그 시간동안 차에서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진심은 때론 고슴도치 엄마에게도 놀랍다. 아이는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방법을 어디서 배우기라도 한 것 같다. 나를 닮아서 그런거겠지, 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픽 새어나왔다.      



   아이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손흥민 선수의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과 <프리미어리그 가이드북>을 펼치고 앉는다. 그리고 읽은 내용으로 엄마 아빠에게 퀴즈를 낸다. 나는 오늘도 잠자리에 누운 아이의 바빴던 다리를 마사지해준다. 나중에 아이가 축구에 대한 마음이 시들더라도, 다른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면 지금의 경험을 살려서 몰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딘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커다란 활력소가 되어주니까. 살다보면 그런 것들이 필요해지니까. 그런 마음을 담아 아이의 다리를 꾹꾹 주무른다. 내일은 아이가 유니폼을 입고 축구 센터에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신이 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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