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급자가 1년 동안 일기를 써온 방법
일기를 쓸 때 지양하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1.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줄줄이 나열하지 않는다.
2. 오늘 나는 바빴다,라는 문장을 지양한다.
오늘 하루에 많은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로 오늘 하루를 특별히 바쁘게 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들을 시간순으로 줄줄이 나열하는 일과, '바빴다'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 부분은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내용도 아니고, 영어로 일기 쓰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방법을 찾아본 적은 없다. 한글로 일기를 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많은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중에 특별히 더 소중하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마음속으로 캡처한다. 내 눈으로 찍어서 마음속에 저장하는 작업이다. 휴대폰을 집어서 사진을 찍고 앨범에 저장할 수도 있지만, 그전에 먼저 잠깐 마음속으로 캡처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그 순간을 메모로 남기지 못하더라도, 저녁이나 자기 전 일기를 쓸 때, 이전에 저장해 놓았던 그 순간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작년 4월에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가끔은 그 장면이 실제 사진으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휴대폰을 뒤져보기도 하지만, 역시 사진은 없다.
예를 들자면, 아이와 둘이 손잡고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보았던 아이의 표정. 마치 동화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봄날의 햇살과 꽃내음과 아이의 활짝 웃는 표정이 슬로모션처럼 나에게 각인되었다. 사소하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평범한 순간이지만, 그날은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어가려면 어른 걸음으로도 15분 이상은 걸릴 텐데, 아이는 힘들다 하지 않고 왕복으로 엄마와 걸어서 다녀왔다. 게다가 언덕이어서 중간에 투정을 부릴까 봐 우려했지만 오히려 아닌 너무 즐겁다며 다음에 또 가고 싶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지나가는 민들레 홀씨만 보아도 아이는 자지러지듯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런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온기로 가득 찼다.
그래서 그 순간에 대해서 일기로 적었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일기이지만 매일 그 일기들에 제목을 만들어주었다.
제목을 붙여주고 싶었다. 이 일기들이 나에게는 숙제를 하기 위한 고난의 과정이 아니라 내 삶을 즐기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들이었으므로 나의 글들을 소중하게 다루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제목을 붙여주었다. 매일 일기를 써야 하기에,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느 순간도 소홀히 스쳐 지나갈 수 없고, 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꼭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특히 이러한 과정을 습관처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꼭 쥐고 있었지만 점차 습관화되어 나중에는 머리가 덜 피곤한 상태에서 일기를 쓰는 단계에 들어섰다.
누군가가 나의 일기를 읽고 싶게 쓰려고 했다.
일기이지만 숙제라서, 일기를 사이트에 올리면 선생님을 비롯하여 같은 반 수강생들이 일기를 읽고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열심히 일기를 쓰고 제목을 달다 보니 수강생들에게서 댓글도 달리고 피드백도 생겼다. 글을 잘 쓴다, 영어를 잘한다의 피드백이 아니라 그들은 나의 정성과 일기를 쓰는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더 기뻤다. 같은 반 수강생들끼리 영어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 수강생들 중 일부는 나의 일기를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서 공감하거나 응원을 해주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소통과 응원이 또 영어를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부스터를 달아주었다.
새로운 표현으로 쓰고 싶어 졌다.
같은 맥락이나 의미를 갖고 있어도 다른 표현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점점 생기면서 일기에 쓰는 표현들이 발전되었다. 이 부분은 수업을 듣고 배운 것을 써먹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은 표현만 계속 쓰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사전을 검색해서 다른 표현을 쓰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는 혼자 감탄할 때도 있다. 내가 이런 표현을 썼다니. 나 방금 진짜 원어민 같았는데. 나 방금 이 표현 너무 좋은 것 같은데. 하면서 내가 쓴 글을 열 번 스무 번씩 다시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한국인의 특성상 문법에 너무 예민해서 내가 쓴 글이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는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읽는 연습, 쓰는 연습이 모두 발전된다고 믿는다.
요즘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나 오늘 영어 수업 끝나고 아이들 학교에 봉사활동 하느라고 바빴어."라고 쓰고 싶지 않다. 실제로 영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로 닭가슴살 하나만 입에 욱여넣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90분 동안 얕보았던 추위에 배신당하고 벌벌 떨면서 집으로 왔다. 나름 바쁜 하루였다. 봉사 활동이 끝나자마자 둘째 녀석이 하원하는 바람에 육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사실 제일 싫어하는 단어들이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백수도 과로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냥 나 오늘 이것저것 때문에 "바빴어"라는 단어는 최소한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특히 더 정신없거나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와중에 또 기쁘거나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을 적으면 된다. 바쁜 시간을 보낸 후 일기를 쓰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는데, busy라는 단어가 일단 눈에 띄면 왠지 다음 문장에는 바빠서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는 핑계 섞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는 클리셰가 생겨버린 것은 나에게만 생기는 현상일까. (사실 나는 한동안 나의 자격지심으로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얕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내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바쁘다는 말을 지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실 나는 우리말로도 '바쁘다'라는 표현에 있어서 부정적인 정서가 강해서 그런 것 인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표현을 자신에게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나 능력을 과시하려는 뉘앙스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 나 바쁜 사람이야. 나는 이런 능력이 있어서 그 일들을 다 하느라 오늘 이렇게 바빴어. 나는 이만큼 바쁘게 지냈는데, 배우자는 나만큼 바쁘게 지내면서 가정에 성의를 다하고 있는지 경쟁하는 경험도 있었고, 요즘은 바쁘다고 말해야 될 것 같은 인사말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만들어줬으리라.
일기를 더 고급진 표현으로 쓰고 싶을 때, 원서를 읽었다.
아이들의 그림책만 보아도 고급진 표현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특히 원서의 그림책들은 한글과는 맛이 또 달라서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어감의 표현들이 많다. 심지어 수준 높은 단어들도 많이 등장하는 것이 그림책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도 읽었지만, 성인들도 대상으로 하는 쉬운 원서를 읽었다. <WONDER>와 <Crying in H Mart>를 읽고 나서, 나는 책에 나왔던 표현들을 내 일기에 적용시켜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한 노력을 하는 시간들은 눈에 띄는 실력의 성장을 보이진 못해도, 적어도 자신만큼은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다. 바로바로 써먹진 못해도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을 예전에는 감을 잘 못 잡았는데, 책을 읽고 나서 그 표현에 대한 감정이나 상황을 확실히 알게 되는 순간에 느껴지는 희열은 경험한 자만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