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2
개인은 자유롭다. 이 자유로운 개인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집단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집단에 반드시 속하게 된다. 개인이 속해있는 집단은, 개인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현역 복무를 마친 20대 남자 공대생'이라는 한 사람의 프로필에는 이미 4개의 집단을 찾아볼 수 있다. '예비군, 20대, 남성, 공과대학'이라는 4개의 단어로 압축되는 이 사람의 간단한 프로필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람의 이미지를 예측할 수 있고, 이 사람이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엿볼 수 있다. 같은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집단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개인은 집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자신이 선택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가끔 집단과 개인의 생각이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 어느 쪽의 의견이 더 행복한지 - '행복하다'는 표현 대신에 '자연스럽다' 혹은 '의미 있다'는 말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 고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상황에서 행복을 정복하려고 시도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게 보면, 굶어 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 이러한 한도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지나친 횡포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것이고, 모든 면에서 행복을 가로막기 십상이다. (p.147)
같은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을 경우도 존재한다. 개인은 수많은 집단의 교집합이고, 집단은 그 개인들의 합집합이다. 다양한 집단에서 영향을 받은 개인들은 각자의 논리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투쟁하며, 그 투쟁은 집단 외부의 것일 수도 있고, 집단 내부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외부로 향하는 투쟁은 집단을 결속시킨다. 하지만 내부의 투쟁은 집단을 분열시킨다. 집단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 혹은 자신이 집단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주류에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꽤 리스크가 있는 행동이다. 괜히 집단을 벗어났다가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집단 내부의 투쟁은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러셀은 어떻게 생각할까?
모든 두려움이 다 그렇지만, 여론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옥죄어대며 발전을 저해한다. 두려움이 강하게 남아 있는 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참된 행복이 깃들어 있는 정신적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 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인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 (p.149)
러셀이 말하는 여론은 우리가 속해있는 가장 큰 집단의 주류 의견이다.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인 '여론'과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해 왔던 '특정 집단 내부의 주류 의견'은 그 속성에 큰 차이점이 있다. 대중의 공통된 의견은 자신이 사회의 주요 인사가 아닌 이상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자그마한 집단 내부의 주류 의견은 너무나도 가까이 존재한다.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먼 곳에 존재하는 형체가 없는 집단이 아니라, 자신 가까이에 실재하는 집단 안에서도 과연 러셀의 생각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개인의 믿음과 집단의 믿음이 서로 부딪힐 때, 어느 쪽의 믿음이 옳은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믿음을 평가하며,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겨졌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행복한지 불행한지, 자연스러운지 부자연스러운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을 하든 일리가 있다. 나 자신을 믿어도 좋고, 그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속한 집단을 믿어도 좋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이 눈은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오세영, 자화상 2)
단 한 개의 흰 깃털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는, 수백 번 날갯짓을 해도 흰 깃털이 떨어질 일은 없다. 이 까마귀는 날개를 펼 때 흰 깃털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눈이 그치고 날아오를 시간이 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힘차게 날아오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