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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Sep 16. 2021

내 질투에선 썩은 내가 나

<프랭크> 천재가 되는 건, 내 삶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안녕하세요. 숨in 입니다. '살롱 드 무비'는 작가가 2020년 하반기 오디오 팟캐스트로 제작했던 동명의 프로그램 '살롱 드 무비' 를 글 콘텐츠로 재편집해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연관된 음악, 문학 등의 콘텐츠를 엮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럼, 햇빛이 가장 우리에게 가까운 여러분의 어느 시점. 언제나 당신의 옆에서 고요히 열리는 영화관이 되고 싶습니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날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인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이라는 시로 오프닝을 열어봤습니다.

질투는 나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바깥을 향한 감정인데요.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이 부분에서 '사랑'은 무엇을 뜻할까요?


아마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질투'와 '날 사랑하는 것'. 그런 것들에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살면서 질투를 한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하더라도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다른 질투를 느끼게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나와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게 되기도 하죠.


"나는 아무리 해도 저런 스타일을 가질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똑똑해지진 못할 것 같아."


오늘 소개할 영화는 주인공이 이런 감정을 깨닫고 정리하는 과정을 담은 웃기면서도 슬픈 영화,


<프랭크> 입니다.


어쩐지 프랭크의 주인공이 엔딩을 맞이하고 부를 것만 같은 가사를 가진 봄여름가을겨울의 원곡, 장기하가 부른 '어떤이의 꿈' 을 함께 들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 있든 없든 이뤘든 버렸든
혹은 잊혀진 사진 같은 사람아
세월이 야속하기엔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드라마

이 영화의 주인공 존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죠. 회사를 다니며 혼자 여러 노력들을 하는데, 잘 안풀립니다. 영화를 보면 객관적으로 존은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재능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존이 우연히 한 밴드의 키보드 연주 대체자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밴드 어딘가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합니다.


이름도 모를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고, 프론트맨인 프랭크는 가면을 쓰고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죠. 음식은 빨대로 먹고 샤워할 때는 가면에 비닐을 씌워두고 씻으면서 철두철미하게 정체를 감춥니다. 존은 이런 특이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왠지 자기가 특별한 아티스트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어 아일랜드까지 밴드와 함께 가면서 음악 작업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가면을 벗지 않는 신비주의 프랭크는, 말 그대로 천재입니다. 음악적 감각이 타고났죠. 이 밴드 안에서 존은 프랭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멤버들 몰래 SNS로 밴드 생활과 프랭크의 천재적인 면모를 기록해 올려 팔로워를 올리는 모습 등을 통해 프랭크를 이용해 자신이 유명한 아티스트로 거듭나려고 하는 조금은 비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만약, 천재가 4명 모인 집단에 혼자 들어간다고 상상해볼까요?


그런데 또 그 분야가 우리 평생의 꿈인 분야라면? 저라면 너무 부럽고 질투나서 정말 미칠 것 같아요. 그래서 존의 앞선 태도나 감정에 공감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질투의 시작이 결국 나를 바깥의 무언가들과 비교하는 것인 이상, 이 질투의 과정 속에서 존은 점점 자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가면을 쓰고 있는 프랭크가 자기 자신에게 더 솔직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면을 쓴 프랭크는 자유 분방하고, 솔직하고, 당당해보이기 때문입니다.


SNS를 많이 하는 존을 통해서, 얼굴을 철저히 가리는 프랭크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다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인 반면, SNS로 자기의 삶을 전시하는 존은 정작 삶 속에 자기 자신이 없다는 걸 드러내줍니다.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프랭크의 가면이 이런 역설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조금 슬픕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있어도 인생 내내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말이죠.


뭔가 출발선부터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그런순간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말라. 무엇이든 노력하면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겁니다.


지금부터 한 평생 클래식을 공부해도 전 제가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천재, 그러니까 영화에서 프랭크처럼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존에게 남은 건 까맣게 남은 질투 뿐인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존은 그런 자신을 알아채고 밴드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런 모습은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 굉장히 씁쓸합니다.


존을 제외한 밴드 멤버들이 순수한 프랭크와 함께 부를 것만 같은 노래, 자우림의 IDOL의 가사를 한번 보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고 유치한 감상에 빠지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이라는 것 쯤 누구보다 잘 알아.
그래도 나는 꿈을 꾸잖아 이상한 이 세상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흘기는 네가 난 더 불쌍해.나는 사랑을 할 뿐이야.


어느새 질투로 인해 존에게 꿈은 꿈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요? 프랭크와 밴드 멤버들은 그저 음악을 사랑할 뿐인데 말이죠.



엔딩에서 밴드를 떠나는 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내 질투에선 썩은 내가 나."


청춘시대 시즌 1에 나온 대사입니다.

질투를 멈출 수 없는 내 자신이 마구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비교의 시선을 거두고 독립된 나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질투의 끝을 설명할 수 있는 말로는 저 대사가 딱인 것 같습니다. 썩은 내가 나는 것처럼 질투하는 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 말이죠. 특출난 음악 재능이 없다는 현실을 너무나 차갑게 맞이하게 된 존은 영화 이후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밴드에는 존과 같이 천재성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밴드 매니저 돈입니다. 돈도 존과 같이 그들의 천재성에서 소외되어 괴로움을 겪는 인물입니다. 자꾸만 밴드 멤버들에게 결과물을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겪는 존에게 다가와 'Be Still' 이라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돈은 존에게


"나도 프랭크가 될거야, 혹은 난 왜 프랭크가 될 수 없지? 란 생각이 들거야. 하지만 프랭크는 단 한명 뿐이란 걸 잊지마."


라는 충고를 남깁니다. 전 이 조언이 천재가 아닌, 나로서의 평범한 삶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난, 누군가(프랭크)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요.




" 너 말하는 거야.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가진게 없거든."


존은 순수한 프랭크를 유혹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 한 밴드 멤버가 존에게 일침을 날리며 한 대사 한마디입니다.

프랭크의 밴드는 특이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 보편적으로 봤을 때 괴짜같아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4명은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서로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들이고 음악 자체가 그들의 언어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존이 프랭크가 가면을 쓴 이유가 과거의 트라우마 혹은 정신질환 때문일 것이라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도, 대중들이 프랭크를 괴짜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가면이라는 외적인 것만 보고 치부해버리는 행동입니다. 영화 말미, 드디어 가면을 벗은 프랭크가 밴드 멤버들과 'I love you all' 을 부르는데요. 누군가의 시선, 판단 없이 뭔가를 사랑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라면, 모두가 각자의 프랭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_2HaVGvXdg




안녕하세요. 숨in 입니다. '살롱 드 무비'는 작가가 2020년 하반기 오디오 팟캐스트로 제작했던 동명의 프로그램 '살롱 드 무비' 를 글 콘텐츠로 재편집해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연관된 음악, 문학 등의 콘텐츠를 엮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럼, 햇빛이 가장 우리에게 가까운 여러분의 어느 시점. 언제나 당신의 옆에서 고요히 열리는 영화관이 되고 싶습니다.


해당 원고를 바탕으로 제작된 팟캐스트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soundcloud.com/r481qk6ozcr2/202009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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