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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Dec 23. 2021

몰입으로 소통하는 댄서, 리즈 킴(Liz Kim)

Inner view 2nd Artist 


inner_view 란? 

지금 현재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봅니다.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어디선가 내고 있는 모든 형태의 예술인들을 조명합니다. 넓은 스펙트럼의 예술을 전달하기 위해 inner_view의 인터뷰이는 릴레이 형태로 선정됩니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저와, 또 여러분과 연결될 아티스트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는 마음 뿐입니다. inner_view 라는 이름답게, 함께 대화하는 아티스트가 가진 내면과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 등을 세심히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 인터뷰이 아티스트 숩(SooB)이 지목한 댄서 리즈킴과 함께 했습니다. 리즈킴은 데미타스 프로젝트와 소나무길에 소속된 댄서인데요. 숩 작가와는 지난 11월 초 아트룸 블루 제 3회 전시 축제 버스킹 퍼포머로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l_i_z__1) 을 통해 다채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댄스필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안무가, 댄서로 활동하며 움직임을 창작하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지금,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하는 아티스트의 작업의 내면과 생각 그 너머까지 함께 깊게 들어가볼까요? 


인터뷰 영상 보기 

https://youtu.be/vzPBd9j5K94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리즈 님은 리즈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떨려요. 인터뷰는 처음이거든요. 늘 간단하게 하는 소개는 “댄서 리즈 킴입니다.” 예요. 그러면 보통 많이 물어보죠. ‘ 왜 리즈라는 이름을 써요?’ 본명은 김지우이거든요. 처음에 댄서 네임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댄서 네임이 주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자기 소개는 제 이름이 왜 리즈가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싶어요. 태몽이 ‘알밤'이었어요. 댄서 네임을 한창 고민할 때 친언니가 옆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알밤이 중국어로 뭐냐고 물어봤더니 발음이 ‘리-즈' 라는 거예요. 근데 마침 영어로 하면 리즈가 ‘전성기' 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 이거 딱이다!’ 라는 감이 왔어요. 리즈로 활동하다보니까 잘 정한 것 같아요. 이름에 감사해요. 태몽얘기로 좀 돌아가면 되게 작은 밤인데 딱 열어보니까 알이 엄청 샛노랗게 알차게 들어차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리고 실제로도 좀 작거든요. 춤을 추면서, 작지만 그래도 꽉 찬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전 사실 원래 춤을 장르로 안 나누고 싶어하긴 하는데, 굳이 장르로 말씀을 드리면 컨템포러리 댄스를 주축으로 하고 있어요. 현대무용이나 마찬가지긴 한데 전 개인적으로 모던 댄스에서 조금 더 현대적인 것을 다루는게 컨템포러리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재즈 댄스, 현대 무용 두개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요소를 가지면서도 무용 요소를 줄 수 있는 그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너뷰는 젊은 예술가들을 초대해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보는 대담 자리인데요. 리즈님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서 묻고 싶어요. 또 어떤 점에서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인정하거나 생각하게 되었는지도요. 


전 이 질문을 들으니까, ‘ 왜 내가 춤을 추게 됐지? 왜 춤을 췄을까. 왜 이걸 직업으로 선택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론적으로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머릿 속에 있는 것들을 유일하게 표현해낼 수 있고 이걸 통해서 사람들과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으로 창작을 했었을 때 내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내 몸으로 표현했을 때 그런 경험들마다 ‘아, 내가 앞으로이 직업을 해나가면 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런 순간 순간들에 인지를 했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강렬한 순간들이 있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1학년 후배들을 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디렉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전 동아리원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 그냥 절 좋아하셨던 체육선생님이 한번 저한테 맡긴거예요. 후배들이 학교 대표로 어디를 나가게 됐는데 애들 디렉팅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감사한 기회로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 퍼포먼스를 만들어 준 적이 있어요. 그때가 가장 처음이었는데, 그때 정말 강렬한 희열을 느꼈어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작업하고 있어요. 


저도 체육 선생님이 고등학교 때 그런 영향을 줬었어서 공감이 되네요. 리즈 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게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많이 거창해보이는데 뭔가를 나 자신을 담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중독적이라서 리즈님과 제가 느꼈던 그런 희열, 재미를 얻고나면 다시는 그 재미를 모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해야할까요.


맞아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춤을 가장 처음 접한 태초의 기억은 언제예요? 


가장 처음 춤을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애가 너무 외소하니까 걱정이 돼서 문화센터에서 하는 댄스 수업을 보내주셨어요. 그때 재미 들려서 꾸준히 다니다가 집 앞에 정말 운 좋게 엄청 큰 댄스학원이 생겼는데, 더 운이 좋게 문화센터에서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그 학원으로 오신다는 거죠. 


벌써부터 운명의 기운이 나네요! 


네, 그래서 저도 생각했죠. ‘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그 학원에서 공연반하면서 공연도 다니고 했고요. 중고등학교 때에는 춤을 쉬었어요. 가끔 댄스 동아리 정도 학교에서 하고요. 그리고나서 이후에 제대로 춤을 춘 건 7~8년 된 것 같아요. 지금 떠올려보니 그냥 인생의 반이 춤이었네요. 



춤은 철저히 혼자하는 예술은 아니잖아요. 함께 하는 사람, 봐주는 사람들의 호흡과 그 공간의 분위기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에너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긴 기간 동안 리즈 님이 같이 에너지를 주고 받은 팀이나 사람들이 어떤 분들이었는지도 궁금해요. 


제가 지금 ‘소나무 길' 이라는 팀을 하고 있지만, 이 멤버들과 같이 또 함께 있는 다른 팀이 따로 있어요. ‘데미타스 프로젝트' 라는 곳인데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는 젬마 언니가 리더로 이끌고 있는 팀이에요. 젬마 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어요.  데미타스 프로젝트도 젬마 언니의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이 모여서 한 팀이 된거예요. 


엄청난 인연이네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맞아요. 지금도 계속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젬마 언니가 미국에 갔다가 돌아와서 했던 수업이 기억에 남아요. 매주마다 즉흥 움직임에 대해서 다루는 수업 커리큘럼을 갖고 왔었거든요. 계속 도전하고 어떠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즉흥 움직임이 너무 두려웠었어요. 점차적으로 수업을 따라면서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 언니가 각자 좋아하는 노래 하나씩을 갖고 와서 솔로 즉흥 퍼포먼스를 하라는 미션을 줬어요. 그때 한 친구가 앙상블 시나위의 ‘눈먼 사랑' 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왔어요. 꼭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노래가 정말 좋거든요. 그때 노래도 정말 좋고 그 친구의 즉흥 퍼포먼스도 마음을 울렸었어요. 항상 수업이 끝나면 서로 둘러앉아서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각자의 움직임을 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혹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움직였는지 그런 생각을 나누는 피드백 자리가 있거든요. 근데 그때 또 다른 한 친구가 ‘눈먼 사랑' 퍼포먼스를 보면서 머릿속에 소설을 하나 썼더라고요. 글로 정리도 해줬는데. 그 글이 생각보다 기승전결이 있었어요. 신기했죠. 즉흥 움직임에서 글 작품까지 이어지는게. 수업을 듣는 친구들, 그리고 수업을 진행하는 젬마 언니 모두 이걸 좀 더 확장시켜봐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견이 모여졌어요. ‘이 글을 토대로 안무를 만들고, 디렉팅을 해서 첫 댄스 필름을 만들어보자!’ 해서 처음으로 데미타스 프로젝트의 댄스 필름이 진행됐어요. 지금 함께하고 있는 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춤과 생각, 그게 또 춤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이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즉흥으로부터 오는 연쇄된 창작이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특히 춤에서요. 일단 몸으로 해볼 수 있으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아요. 즉흥의 힘이 강한 것 같아요. 


살짝 언급하셨던 ‘소나무길' 팀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어떻게 시작된 팀인가요? 


데미타스 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댄스 필름 프로젝트에서 지금 소나무길 멤버들과 함께 ‘소나무'와 관련된 작업을 맡았었어요. 그때 작업하는 과정에서의 케미, 추구하는 움직임들이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팀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죠. 소나무길에서의 작업들은 대부분 이야기를 많이 전달해드리려고 하고 그 메시지 안에서 서로 관객과 우리 무용수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구간들을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장르는 없고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저희가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0tAP78e7ho 

<작품 설명>
서로 다른 자태를 자랑하는 소나무.
몸이 휘어 이상의 성장이 멈춘 듯 하지만 그 내력(內力)은 단단하고 권고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에 영감을 얻어 
우리는 우리들의 몸을 엮어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한다.


전, 사실 <Gold>를 처음보고 알 수 없는 눈물을 살짝 흘렸거든요. ‘너무 멋지고, 아름답다'를 넘어서 가슴 안 쪽에서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었어요.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주마등 지나치듯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었거든요. 관객으로서 꼭 전달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정말로요. 


영상을 보기 전에 소나무길 팀이 적어둔 작품 의도를 안보고 봤어요. 근데 다 보고 설명을 열어보니까 제가 느낀 그 느낌이 맞는 거예요! 사실 내가 생각하는 걸 남한테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제대로 전달되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모든 예술가, 창작자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내가 표현하려는 걸 남에게 전달해야할 때 ‘조금 더 쉽게 풀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내가 하려고 하는 거 좀 어렵고 난해해보이더라도 유지해야 하나?’ 이런 고민 해보신 적 있으세요?


되게 옛날에 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오히려 그냥 관객들에게 물음표를 계속 던져주는게 우리의 역할이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원래 우리는 이 작품을 만들 때 1을 생각하면서 물음표를 관객에게 던진 건데, 오히려 관객들은 10을 생각해내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똑같은 1을 생각해주셔도 정말 감사한거고요. 전달되는 순간, 그 작품은 해석하기 나름인 존재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일단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거 일단 다 전달해보자!’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거 정말 좋은 것 같아. 그게 맞아. 그게 맞는 것도 돼!’ 라는 답변을 줄 수 있게끔, 그렇게 소통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소나무길의 소개에서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작은 움직임으로 주는 위로'에 대한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소나무길, 혹은 리즈 님이 생각하는 위로는 좀 더 자세하게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요. 위로라는 게 다양한 방식과 마음의 모양이 있잖아요.


어쨌든 사람을 위로하려면 공감이라는게 필요하잖아요. 저희는 그 포인트에 방점을 찍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안아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아픔을 괜히 더 벌려서 찌르면 더 아프잖아요. 그걸 닫고 쓰다듬어줘야 이 사람이 낫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그걸 들추고, 직면하게 하기보다는 덮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 위에서 그 사람이 얻는 것은 스스로가 하게 해주는 거죠. ‘ 상처를 덮은 이 위에서 네가 이제 얻는게 있길 바라.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 인 것 같아.’ 공감이 힐링을 주는 과정까지 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치유를 얻는 건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소개에서 저를 건드렸던 포인트 하나 더 짚고 넘어가볼게요. 소나무의 단단하고 견고하다는 매력을 짚어주신게 좋았어요. 작품을 보면 계속 움직이고 있고 어떨 때는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이는데 그 안에서도 서로의 견고함이 느껴졌거든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에 살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단단함, 무심함 이런 것들이 인간이 추구해야할 감정이 된 것 같아요. 소나무로 치면 내력이 강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1년 넘게 추구하다보니까 이런 감정이 되려 사람을 좀 외롭게, 어둡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드는데 리즈님이 생각하는 소나무로부터의 단단함은 어떤가요? 


저도 일단 작년부터해서 올해, 1년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소나무길의 첫 작품인 <Gold> 디렉팅을 제가 했거든요. 우선 노래를 듣자마자 정말 오랜만에 노래 자체에서 주는 힘이 크게 와닿았어요. 들을 때마다 저화가 되는 기분이 들고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에 혼자 아무렇게나 춤을 추고 있는 그런 느낌도 들고, 지치면 누워서 하늘만 바라볼 수 있는,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 시작해서 안무를 먼저 만들었고, 그러면서 ‘어, 소나무길이라는 팀을 한번 해볼까?’ 했던 거예요. 팀보다 작품이 먼저였어요. 소나무길 멤버들이 너무 좋아해줬고, 그런 감정들에 공감도 같이 해줬어요. 평소에도 의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어서. 그 때 든 생각이 내가 아무리 흔들려도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언제나 내 옆에 쉼터처럼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 안이 아무리 속시끄럽고 혼란스러워도 잠시만 빠져나와서 주변을 돌아보면 사실 그렇게 멀리 떠나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요. 

소나무길이잖아요. 단단한 나무들이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홀로 있으면 외로울 거예요. 하지만, 나무 주변에는 대부분 나무들이 있잖아요. 전 사실 소나무의 내력을 나 스스로의 단단함으로 생각했기보다는, 내 주변에서 나를 보듬어주는 존재들의 단단함을 생각했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같은 나의 사람들은 어디 떠나지 않잖아요. 나의 맘을 잠시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내력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며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나무길이라는 팀을 통해서 작업을 하는 과정이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모여서 나중에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에게 쉼터에 날 한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라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리즈 님은 대체로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는 지 궁금해요. 좀 예민하게 관찰하는 부분들이 있나요? 


음악이 주는 무드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많고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서 오는 메시지들을 어떻게 하면 춤화 시킬 수 있을 지 고민을 많이 해보는 것 같아요. 그런 미디어 작품들은 대부분 대사라는 언어와 시각적인 이미지, 청각까지 모든 감각을 필요로 해서 전달을 하는데, 춤추는 사람들은 오로지 입을 꾹 닫고 전달을 하는거다 보니 더 직설적이게 표현을 해볼 수 있으면서도 추상적인 거기도 하거든요. 그런 전달 방식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올해 움직임이라는 예술을 카메라로 담거나 직접 체험해볼 기회를 가지면서 말로 못할 표현들이 몸으로 소통되는 강렬한 경험을 했거든요. 메시지를 언어로 전달하는 것과 움직임으로 전달하는 것의 간극이나 차이를 느끼신 적이 있나요? 


음, 그냥 그건 것 같아요. 언어는 좀 직설적이게 바로 바로 나오잖아요. 언어가 결과라고 하면 춤을 통해 표현하는 건 그걸 풀어내는 과정이 아닐까요? 대부분 그걸 표현한 춤을 볼 때 딱 한 번에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 사람이 뭘 표현하고 있는지를 다 보고나서 ‘아, 그랬구나! 저거였구나!’ 하고 느낌표를 줄 수 있는게 춤이고 움직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쉽게 얘기하면 언어는 듣는 순간 마다  계속 !!!!!로 나가온다면 , 움직임은 ????! 의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래요, 평소에 제가 느끼는 질문과 관련된 생각은 그런 것 같아요. 저 또한 춤을 표현하면서 그렇게 느끼고 있고요. 


다시 리즈 님에게로 포커스를 맞춰볼게요. 리즈 님의 작업물들을 보면 표정, 감정, 몸짓으로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리즈 님이 갖고 있는 몸과 얼굴의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화면 넘어에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열망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에너지를 전 연극, 뮤지컬에서만 받아봤지 영상으로는 처음 느꼈어요. 


그 처음이 제가 된건가요? 정말 감사해요, 진짜. 



춤추는 순간들에서 리즈 님을 가장 끌어올리고 꽉 차오르게 하는 감정은 대체로 어떤 건가요?

 

제가 보통 춤을 출 때 항상 상상하는 걸 즐겨해요.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이 춤을 어떤 곳에서 추고 있고, 이 앞전에는 어떤 상황을 겪었을까, 어떤 감정으로 지금 춤을 추고 있을까, 그런 ‘상상'이요. 그걸 그 순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표출해내곤 하는데요. 그런 ‘순간' 속에서 희열이 느껴지긴 해요. 상상을 하며 춤을 추다보면 완전히 몰입되는 순간이 오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드라마, 영화나 연극을 보고나면 여운이 남는다고 많이들 말하잖아요. 근데 춤을 추는 ‘와중'에도 그 여운이라는 감정이 딱 올라올 때가 있어요. 어느 하나의 감정이 아니죠. 기쁜 감정이든 모호한 감정이든, 우울한 감정이든 알 수 없는데 그런 감정이 뜨겁게 올라올 때가 있어요. 완전히 몰입했다는 느낌이 희열을 주는 것 같아요. 


관객에게도 느껴져요. 가끔 어떤 작품들은 퍼포머는 몰입했는데 관객은 몰입되지 않는, 그런 소통의 부조화의 순간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리즈 님은 그런 면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잘하는 아티스트이신 것 같아요. 춤을 출 수 있다는 건,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표출하는 매개체를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 매개체를 정말 잘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그걸 몰라서 헤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춤을 처음 추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많이 주고 싶어요. 제가 하고 있는 클래스들도 대부분 감정을 주로 다루거든요. 제가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연기 수업을 약간이지만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재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평소에는 입을 꾹닫고 감정을 표현하고 몰입을 주는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보니까 대사로 이걸 전달하는게 스스로 약간 어색한거예요. 그래도 혼자 카메라 옆에 두고 몰입해서 대사를 뱉어본 적이 있는데, 그 순간의 나는 춤으로 마음 속의 감정을 표현하는 ‘나'와는 또 다른 거예요. 그렇게 제 다른 면을 느껴볼 수 있어서 연기를 좋아하게 됐는데요. 배우들이 관객들한테 몰입감을 주는 그 힘을 저도 춤에 많이 담고 싶어서 연기, 감정 이런 것과 연관해서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춤을 처음 추는 사람들도 그 몰입감을 배우게 되고, 그걸 베이스로 가져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방법들을 찾아내서 딱 표현해내면, 누구나 안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이 안무는 꼭 만들어야 겠다, 이 곡으로 꼭 해야겠다!’ 내면에서 알 수 없는 열망이 끌어올라와서 시작했던 작품 중 하나를 꼽는다면? 


제가 솔로로 진행하는 필름들은 모두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는데요. 그 중에 제일 애정하는 작품을 소개해드릴게요. 제일 초반의 솔로 필름인데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라는 주제의 작품이에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음악도 이 드라마의 Ost를 썼고요. 그 드라마 안에서 쓰이는 파란색의 메시지도 댄스 필름에 녹여냈어요. 결국은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야기예요.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난 뭘 믿고 있는 걸까?’ 많이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https://www.instagram.com/tv/B_Zmn-GJCig/?utm_source=ig_web_copy_link 

<작품설명>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 Director - LIZ Kim
어째서 모든 우연이 정해진 것 처럼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갔는가를..
그리하여 이 일을 맨 처음 시작한 사람마저도 통제할 수 없게 되버렸는지를..
두 개의 거울을 마주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어둠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주 선 거울에선 괴물이 튀어나오듯 어둠은 어둠을 비춰 또 다른 어둠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통제되지 않는 전혀 다른 어둠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도플갱어].
얼굴을 마주치면 죽고 만다는 또 다른 나를 만난 것이다.
«고립된 공간,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감정적으로 불안한 고등학생들,
그리고 그 안에 순도 높은 '악(惡)'이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가능할까 에 관한 이야기이다.
열여덟, 가능성과 불안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그러한 아이들에게 한가지 실험을 하는 괴물...» - 드라마 '화이트크리스마스' 
惡이란 무엇일까? 惡은 만들어지는 걸까, 타고나는 걸까?


리즈 님의 작품들을 보면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독창적인 무브먼트가 많은 것 같아요. 동작들의 모티브는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이신가요? 


일상에서 받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춤이라는 게 ‘처음부터 난 이렇게 췄어!’가 불가능해요. 계속 바뀌죠. 최근에 제 스타일로 조금씩 정착을 하게된 영감을 준 영화가 하나 있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뀌겠죠. 봉준호 감독의 <마더> 인트로 장면인데요. 김혜자 배우님이 갈대밭에서 나와서 정처없이 막 걷다가 푸른 들판에 멈춰서서 그냥 이렇게 서서 알 수 없는 춤을 춰요. 계속 춤을 추는데 그 안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들이 점차 벅차오르고 얼굴에서 그게 드러나면서 딱 타이틀이 뜨는 그 첫 장면이 정말 강렬하거든요. 사실 영화를 처음 보면 시작부터 이상한 춤을 추니까 의아한데, 다 보고 돌아가면 느껴지는게 많은 장면이에요. 여기서 큰 에너지를 받은 것 같아요. 아까 춤을 추는 순간, 순간에도 상상을 많이 인지한다고 했잖아요. 그 과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같은 영화였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해요. 아르헨티나의 한 소설가 보르에스와 중국의 소설가 위화는 10개의 단어로 자기의 인생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떤 단어 없이는 자신의 생을 표현할 수 없다는 거죠. 리즈 님에게는 ‘이 단어' 없이는 날 설명할 수 없다, 하는 인생의 단어가 있으신가요? 


이 질문, 사전에 받아을 때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정말로요. ‘나를 표현할 수 있는게 뭘까?’ 계속 고민하다가 그냥 날 대체 가능한 ‘글자' 를 생각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김지우', ‘리즈 킴'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되는거예요. 뭔가 이것 말고 어떤 한 단어를 정해버린다면, ‘내가 시간이 지나서 그게 나에게 중요해지지 않는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결국 ‘나'이지 않을까 해요. 이게 한참 고민한 결과의 대답이에요. 


그러네요. 저 소설가들은 생의 마지막에 정한 단어들이지만, 우린 아직 어떤 단어에 갇히기는 젊잖아요. 그러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리즈 님의 미래에 대한 예고편을 살짝 듣고 싶은데요. 


연기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조금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방법, 몰입을 전달하고 제시해줄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내년에도 그것들을 연구하는게 목표이기도 하고요. 전 내년의 제가 정말 기대돼요. 연기도 배우고 춤도 저도 더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어느 것도 완성형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계속 바뀌고 계속 노력하고 배우고, 계속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오늘의 인터뷰가 내년에 봤었을 때는 제가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모르죠. 


오늘 대화, 즐거웠어요. 감사해요. 

저도 제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해요. 



끝으로

릴레이라는 규칙 아래 우연히 만나게 된 아티스트 리즈 킴과의 대화는 또 다른 세계가 하나 확장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몸을 붓을 삼아 수많은 순간 순간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마음에서 끌어오르는 강렬한 무언가는 어떻게 표현해내야할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말들은 인간의 마음과 세계의 무언가를 담아내기에는 너무 한정적인 매개체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리즈 킴의 작품들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 아름다운 작품으로 표출해주어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몰입에도 좋은 몰입과 나쁜 몰입이 있습니다. 

아티스트들이라면 한 번쯤은 가지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나의 몰입에 집중해야할까, 감상자와의 소통을 중시해야할까. 

보통, 몰입에 취하다보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경우가 있기도 하죠. 

리즈 킴의 댄스 필름들을 감상하다보면, 움직임 하나에 내 마음 하나를 던지게 됩니다. 

그녀가 몰입한 순간, 나의 생각과 그녀의 움직임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전달하고 주고 받으며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 몰입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의 다리를 놓는, 리즈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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