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갤러리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그룹 전시 'CURB'
디언타이틀드보이드 그룹 전시 <CURB> - 신재영, 양숙현, 제서영, CAROLINE REIZE, IVAAIU CITY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역사에 어떻게 쓰일까. 절체절명의 위기 혹은, 기회 그 글자 하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모두 인간에게 달려있다. 팬데믹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경고가 아닐까. 인류가 경고를 귀기울여 듣는다면, 지구 역사상 팬데믹은 지구의 수명을 연장한 보물같은 기회로 기록될 것이고, 그 경고를 애써 무시한다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실수로 꼽힐 것이다. 디언타이틀드보이드에서 열린 그룹전 <CURB>는 이 기로에선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자연의 섭리라면, 노력이라도 해봐야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팬데믹이 일상이 되고,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게 서서히 우리가 팬데믹 이전의 일상처럼 돌아가고 있다면 적어도 그 전처럼 행동하지는 말아야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있다.
전시명이기도 한 ’CURB‘는 동사로 ’좋지 못한 것을 제한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5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며 좋지 못한 것을 제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들의 표현은 현대에만 가능한 기술들을 활용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실시간으로 반영함과 동시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어 힘이 있다. 언뜻보면 자연의 데이터와 기술의 만남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신기한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황홀감에 빠지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만나면,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 끝에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자연에게 잔인한 시선을 두어왔었는지 스스로 체득하게 만든다.
이번 <CURB> 전시를 눈 여겨 본 이유는 주제만큼이나 형식에도 있다. 뉴미디어 인스톨레이션 (New Media Installation), 포인트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한 시각예술 작업 (Point Cloud Visualization), NFT를 주제와 재료로 삼은 오디오 시각예술 작업 (Audio-Visual) 등 장르 자체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지구의 환경적 주제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장치와 다양한 기술이 융복합된 이번 전시는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여차하면 과학 박물관에 갔을 수도 있는 데이터들이 크고 작은 시선과 메시지가 더해져 흥미로운 현대미술로 둔갑했다. 형식과 주제의 밀접한 부착을 통해 전시에서 제시하는 주제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예술은 어떻게 발전하고, 확장될지도 고민해보게 할 것이다. 해당 아티클에서는 인상 깊었던 몇가지 작품을 작가 중심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포인트 클라우드 Point Cloud는 3차원 공간상에 퍼져있는 여러 점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의미한다고 한다. 보통 Lidar 센서, RGB-D 센서 등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를 의미하는데, 물체에 빛과 신호를 보내 돌아오는 시간을 기록하여 빛/신호 당 거리 정보를 계산해 하나의 포인트를 생성하는 원리라고 한다. 이러한 점들은 3차원 공간상에 위치하고 포인트 클라우드는 이 포인트의 집합을 의미한다. 포인트 클라우드는 독립적(individual), 연관없음(unrelated)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건물 등과 같은 객체의 속성을 방해받지 않고 측정하는데 유용한 기술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3D 스캐너와 함께 데이터 가용성, 정확성, 밀도와 크기 표현이 향상된다면 큰 잠재력을 실현할 것으로 보고 있는 기술이다. 양숙현 작가는 이러한 기술을 예술의 장으로 끌어와 시각예술에 활용하고 있다. 전시에 출품된 본 작품 <THE ISLE>은 통영이 간직하고 있는 자연환경을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 집합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전혀 다른 공간에서 통영의 자연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을 의미하는 art의 어원은 라틴어 ars를 거쳐 그리스어 techne로 올라간다. 기술과 예술의 어원은 같다. 그리고, 기술과 매체가 발전할 때마다 예술도 격변기를 맞았다. 서로 다른 유형의 과정과 결과를 가지지만 예술과 기술은 탄생 후부터 지금까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저 실물을 측정하는 데이터 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 포인트 클라우드 기술이 인간에게 자연을 바라볼 또 다른 눈을 선물해준 것이니 말이다.
스크린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스크린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졌다. 포인트 클라우드에 양숙현 작가의 시각화 과정이 더해진 작업물이 스크린이 아닌 내 몸을 투과하고 있었다. 기술과 자연 그리고 그 사이 인간. 이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한 순간에 몸을 통과하고 또, 빗나가고 있었다. 자연을 품은 기술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전해주지만,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연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자연을 회상하고 체험할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상상이 들었다.
현 시점, 예술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NFT다. NFT는 현대 예술이 소비되는 방식, 예술가들의 창작, 저작 수입 등에 큰 변화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시에도 다양하게 활용된 미디어 기반의 작품들은 소장하기가 어렵고, 형식과 매체 즉 기술이 바뀌는 이상 구조적인 변화는 필연적일 것이다. Caroline Reize의 <New World?>는 급성장하는 NFT 시장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환경 문제에 주목한다. NFT의 기반 시스템이 되는 블록체인은 암호 화폐 채굴, NFT 인증 작업, 등을 위해 고급 암호 방식을 이용하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해야만 한다. NFT를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컴퓨터의 사용이 에너지 사용 뿐만 아니라 ‘E-waste’를 속절없이 생산해낸다.
작가는 가장 대표적인 NFT 거래 플랫폼 OpenSea 속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하여 NFT 파도를 구현해냈다. 쓰레기 파도처럼 무한히 움직이는 NFT 조각들은 현시점 현실에서 문제시되는 플라스틱 바다가 머지않은 미래에는 해당 작품처럼 시각화되어 뉴스에 나오는 날도 올 것 같다는 아찔함을 불러일으킨다.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NFT 조각들은 현대에는 더 이상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이 완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충격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일렁이는 파도를 통해 과연 미래로 달려가는 기술들이 ‘정말로' 미래를 위한 일일지, 환경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새로움에 환호하는 NFT 시장의 달리기가 어떻게 될지 다양한 고민점을 제공해준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당장 시급한 현실 세계의 환경 문제, 쓰레기 문제도 인간의 이익이 앞선 가운데 명쾌한 해결책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세계인 메타버스에도 과연 그런 쓰레기들이 없을까? 인간의 탐욕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IVAAIU CITY는 도시계획, 선출, 화학, 광고기획, 영상 전공자들이 모여 서울과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IVAAIU 는 각각 Idea, Visual, Audio, Architecture, Infrastructure, Urbanism을 뜻한다. 시민의 아이디어가 시각적, 청각적, 건축적, 인프라적 미디어와 연계되어 하나의 도시 환경으로 귀결된다는 세계관 아래 다양한 미디어를 융합하여 작업하고 있다. 2013년에 결성되었으며 미디어 아트와 기술 필드에 발전, 그와 동시에 사회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공간을 기반으로 전시를 무대 연출의 관점에서 공간적으로 구축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IVAAIU CITY의 작업과 도시계획 플래닝은 아래 공식 사이트를 통해 DB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룹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나니, 이번 전시에서 그들이 선보인 것은 가지고 있는 것에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IVAAIU CITY가 출품한 4개의 작품 중 뉴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작업인 'Lagrangian Points' 는 전시장 중심부에서 전시의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태양으로 인한 우주 기상 변화 관측에 사용되는 기술인 라그랑주 포인트를 개념화하였다. 상부와 하부의 두 큰 고리로 이뤄져 있는데, 상부의 고리는 태양 주위에서 궤도를 그리며 빛을 받는 지구를, 하부의 고리는 지구와 태양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며 빛에 따라 반응하는 라그랑주 포인트들을 의미한다.
가만히 전시의 중앙부에 서서 다른 전시 작품들에 둘러싸인 채로 이 작품을 응시하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빛의 움직임에 고요히 집중하게 된다. 인간의 손을 벗어나 우주에 가 있는 기술들이 기후 변화를 순간순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궤적을 묵묵히 그리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이 아니면 알지 못했으리라. 다른 작품에 눈길이 가 있어도 라그랑주 포인트의 빛이 은근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여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응시하게 만드는 것처럼, 더 많은 이들이 지구가 처한 문제에 조금이라도 신경이 거슬려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IVAAIU CITY의 또 다른 작품 ‘WASHED'는 데이터 시각화 Data Visualization 작업이다. 해안선이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 몰디브와 같이 먼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현재 강원 고성에서 경북 경주까지 857km의 해안선을 따라 있는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강원 동해안 기준으로는 57만 3945 ㎡, 경북 동해안 기준 6만 9380㎡의 면적을 바다가 삼켰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실시간으로 반영, 기록되는 동해안 해안선의 환경 데이터를 통해 파도와 모래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만들어낸다.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은 언제든 마음 먹으면 바다로 달려가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기고 &힐링'을 자처하지만, 우리가 힐링에 빠져있는 사이 수많은 모래들이 동시에 씻겨 내려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안침식 안전지대가 아니다.
사실, 작품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마치 밤바다 혹은 우주의 은하수를 보는 것처럼 평온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안침식 사태를 알고 나면 작품을 통해 느꼈던 평온이 환경 문제를 회피한 채 느껴지는 부채 있는 평온이 아닐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아름다울수록 경계해야 하고 평온할수록 뒤돌아봐야 한다.
기술에 관점과 메시지를 더하니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이 되었다. 작품은 더이상 멈춰있지 않고, 시대와 소통하며 영원히 살아있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넘어서 기술의 영향력이 지대해지는 이 미래미술은 어떻게 정의될까. 이 작품들은 과거에 시대의 기록으로 남을까, 창조적인 예술 작품으로 남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예술이 가지는 융복합적 에너지를 관객에게 파워풀하게 전달했다는 것으로 앞으로 예술계에 더욱 더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전시는 2월 17일자로 종료하지만 한국에서 기술과 예술의 복합으로 현시대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예술을 하고 있는 본 전시의 5명(팀)의 작가들의 작업을 앞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