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으로 시작된 또 다른 도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특히 요즘처럼 사고가 멈춰버린 게 아닌가 싶은 시즌에 HOC는 참 좋은 곳이다. 클릭 한 번이면 쇼핑하듯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 수 있다.
이번 AI위크도 그랬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아, 나 요즘 ChatGPT 프로젝트 기능 잘 쓰는데 경험담이나 나눠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신청했다. 물론, 또 언제나처럼 신청 버튼을 누른 뒤 후회가 밀려왔다.
AI위크 공지를 처음 봤을 때, 'AI'라는 명확한 주제가 끌렸다. HOC 위크는 하이아웃풋클럽에서 멤버들이 멤버들을 대상으로 여는 공유회인데 이번에는 AI 활용법을 주제로 열렸다.
그래서일까, 하이아웃풋위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 전공과 관련된 분야이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비롯된 약간의 오만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판이라면 내가 낄 자격이 좀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슨 대단한 걸 안다고? 이 정도 기능은 검색 몇 번이면 다 나오는 건데?"라는 생각도 들어 한 번은 뒤로 가기를 눌렀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 신청했다. 그냥 뭔가 질러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준비 과정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했다.
나는 발표가 어렵다. 특히 PPT가 어렵다. 대학생 때는 내용이 부실해도 말빨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고 또 그것이 썩 괜찮은 역량이었지만, 대학원에서는 그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발표 첫날, '당신은 앵무새처럼 말한다.'는 피드백 이후 두 해 동안 수없이 혼났고 어느새 발표 공포증이 생겼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 칭찬을 받은 건 석사 졸업 디펜스 때뿐이었으니...
실제로 회의 중 발표를 진행하다 중간에 말을 멈춰버렸을 정도로 제대로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이 2년 이후,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발표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하얘지곤 한다.
이번 AI위크도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경험담만 나누자", 부담없이 PPT를 만들었다.
그리고 AI 위크 첫날 진행된 쏘님의 발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허접한 걸로 발표해선 안된다.‘
셀프디깅 데이에 함께 연사로 섰을 때부터 쏘님의 발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다.
PPT는 디자이너답게 미감을 챙겼을 뿐 아니라 기존의 틀에 박힌 구성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전달력이 좋았으며, 내용은 간결한데 깊이가 있었다.
이번 AI 위크에서의 발표 내용도 본인의 실제 경험을 자세히 풀어내 반응이 뜨거웠다.
'아, 저 정도는 해야지. 내 발표는 고작 이 정도인데 도움이 될까?' 그렇게 발표 당일까지 자료를 보강했다.
내가 발표 주제로 잡은 것은 '실제 업무에서 ChatGPT 프로젝트 기능을 쓰며 느낀 장점' 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이트를 담아내되 코딩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고
특히 GPTs와의 차이점이 헷갈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그 부분을 추가로 정리했다. 또 발표 분량 외에도 프롬프팅 기법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호는 코드에서 기반된 것이 많았기에 간단히 표로 정리해 부록으로 넣었다.
AI위크 시작 이전, 세션 신청자 수를 알려주셨다. 내 세션 아래 적혀있던 숫자는 90. 전혀 예상치못한 숫자에 순간 얼어붙었다. 그 수는 전체 세션 중 2위였다. (1위가 91명) 물론 노쇼가 있다곤 하지만, 그 숫자를 본 순간부터 긴장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칼퇴라는 단어가 너무 자극적이었나? 내 발표를 90명이 듣는다고? 진짜 괜찮을까?' 제아무리 AI위크는 무료로 진행되는 것이라지만, 90명의 30분이라는 시간을 무쓸모하게 만들면 어쩌지라는 걱정마저 밀려왔다. 아무래도 90명은 많은 숫자니까. 90명이면, 강의실 하나를 채우는 규모니까.
그러나 걱정한다고 시간이 흐르지 않던가. 8시가 되고, 정신없이 발표를 마치고, 채팅을 확인했다.
(이런 발표가 있을 때마다 나의 취미는 채팅 로그를 꼼꼼히 읽는 것이다. 발표 후에라도 말이다.)
이번엔 채팅 확인용으로 따로 아이패드까지 켰건만 위치 선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실시간으로는 제대로 읽지 못했더란다. 나중에 확인한 채팅창에는 익숙한 이름도, 새로운 이름도 있었다.
기뻤던 것은, 다들 굉장히 활발하게 리액션을 해주셨었단 것이다. 특히 재미 삼아 넣었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반말하지 않도록 해." 같은 프롬프트 지침 예시에서 반응이 터졌다. "기강을 잡고 시작하시는군요." "저도 반말 금지 프롬프트 넣어야겠어요." 이런 반응을 보면서 혼자 피식 웃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건 Q&A가 활발했다는 점이었다. 질문이 많으면 발표가 부족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정말 궁금했던 부분을 짚어주신 것 같아 기뻤다. 예상대로 많은 분이 GPTs와 프로젝트 기능의 차이를 헷갈려했고, 덕분에 부록을 하나 더 준비하기를 잘했다 싶었다. (디펜스의 습관화란...)
게다가 폴더 정리법이나 직접 사용해 보면서 느낀 어려움 같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들도 많았다. 이런 질문들은 그냥 기능 설명만으로는 답하기 어렵기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었겠다 싶었다.
질문 외에도 참여자들끼리 각자의 팁을 공유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채팅을 하나하나 읽다 보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변화라고 하면 글쎄... 일단 작업 방식이 하나 바뀌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며 GPTs와 프로젝트 기능의 차이점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한 덕이라 볼 수 있겠다.
난 기존에 논문을 읽을 때 빠르게 스크리닝 하는 목적으로 GPTs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발표 준비를 하면서 "굳이 GPTs를 안 써도 프로젝트 기능으로 더 정리해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GPTs의 대화 이력은 프로젝트 폴더로 넣어지질 않아 다시 보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겨 GPTs에 입력했던 지침을 프로젝트로 옮겨놓으니 더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왜 진작 이렇게 안 했을까?' 싶은 느낌. 역시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운다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HOC에서 이런 발표나 챌린지를 할 때마다 나는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해내고 나면 "어라, 어쨌든 했네."가 된다.
이게 성장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걸 해낸다는 것.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
지금까지도 그랬듯 HOC는 언제나 내 자그마한 시도와 성취를 책임져 주는 곳이다.
인스타툰을 시작할 때, 연말파티 기획단에 지원할 때,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를 열 때, 브런치 작가 데뷔를 할 때. 모든 도전이 그랬다. AI위크도 그랬다. 만약 신청하지 않았다면?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겠지. 그렇지만 클릭 한 번으로 시작한 이 도전은 또 하나의 경험이, 또 하나의 성취가 되었다. 언젠가 또 다음 도전 앞에서 주저하고 있겠지만, 그때도 결국 해내고 말겠지. 아마도.
어찌되었든, 결국 이번에도 해냈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긴 시간 발표를 들어주신 분들, 질문해 주신 분들, 그리고 이번 AI위크를 기획하고 진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주저리가 길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