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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연구원 때려치고 뭘 한다고요?

태어나 처음으로 신점사주 보고 온 후기

by 단새

요즘 부쩍 생각이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싫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말은 왠지 너무 거창하고, 이 일을 끝내고 싶다는 말은 너무 절박하다.

궁금한 건 이거 하나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지금 나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AI 분야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전공을 살려 이력서를 내다보니 이리 일하고 있다.
겉보기에 나쁘지 않다. 분야도 유망하고, 직장도 남들 보기 괜찮고...


하지만 내 속은 다르다.
이 일이 싫다기보다, 이 일의 구조와 내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연구는 본질적으로 끝이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발판 삼고, 근거 삼고, 정확한 데이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를 쌓아 올리되

그 결과물은 전에 없어야 하며 어딘가 한구석이라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정답이 없는 길을 닦되 그 길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실로 쌓아 올려야 한다.


또 여타 일이 그렇듯 매 순간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 성과는 노력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설픈 완벽주의자다.
완벽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느끼고, 그 기준에 못 미친 나를 채찍질한다.
성과가 안 나오는 이유를 나의 부족함에서 찾고, 더 노력하자며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티고 있다.


그러잖아도 자기파괴적인 연구라는 업은 이런 나에게 장기적으로,

최소한 정신건강 면에서만은 이로울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이따금 사주를 보러 가면 궁금한 점은 딱 하나다.
“저, 뭐 해 먹고살아야 할까요?”




친구의 소개로 함께 신점을 보러 갔다.

사주만 보는 게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그런 신점이라고 하나.

궁금한 걸 미리 물을 것도 없이 생년월일이랑 이름만 듣고 말을 막 해준다는 그게 신기해서

뭔가 다르려나? 호기심 반 겸사겸사 당일치기 여행 가자 반 하여 다녀왔다.


생각보다 그리 험하거나 신이 어쩌고 하는 분위기는 아닌 곳에 앉아 생년월일과 이름을 말했다.
도사님(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은 내 사주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쭉 안 있을 거 같다고? 맞아. 작더라도 당신 거 할 사람이야. 어쨌든 서비스 업을 하게 될 거야."

“그렇다고 상품 팔고, 보험 팔고, 커피 팔고… 남들 다 하는 거 하는 거 아니다. 그런 걸로는 돈 못 번다.”
“예체능 소질은 있지만, 직업은 안 된다. 그건 취미로 풀어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년 여름 지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풀린다.”
“너는 신뢰를 파는 사람이야. 분명한 걸 원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찾게 될 거야. 공인중개사 같은 거, 그런 거.

사람들이 부탁하는 거에 의미를 정리해서 말해주고, 방향을 보여주는 사람이야.”


처음엔 ‘공인중개사’나 ‘서비스업’이라는 말이 너무 뜬금없게 들렸다.
내가 부동산을 잘 알지도 않고 커피숍을 차리겟다는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곱씹어보니 핵심은 직업이 아니라 일의 성격에 있었다.

신뢰를 주는 사람. 의미를 정리하는 사람.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예컨대, 직군으로 따지자면 컨설팅이나 상담의 성격을 포함한 일일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면 그 일이 부동산이든, 글쓰기든, 상담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반대로, 왜 상품 판매나 보험 영업 같은 일을 피하라 했을까?
그건 내가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구조에 취약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진심을 다해 관계 맺는 스타일인 나는 그런 구조 안에서 금방 지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뭔가 들은 내용을 떠올려보자면 같은 일, 같은 사람과 쭉 오래간다기 보다도

사람이 나에게 오고 가고. 다음 사람이 오고 가고...


아무튼 부동산 이미지를 떠올리니 대강 무슨 형태인지 감이 잡힌달까.

다대일보다 일대일, 일대 소수로 사람을 대하는 그런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도사님은 또 말했다.


"지금 내가 말해도 모를거야. 당신은 당신의 진가를 몰라. 낮게 생각하지 마, 자기 스스로를."

“그러니까 남들이 잘한다고 하는, 남들이 맞는다고 하는 옷을 입어야 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내가 잘하는, 남들이 잘한다 하는 일을 하라는 소리였다.

내가 잘하는 일을 다시 돌아봐야 하나 싶었다.
최소한 하고 싶은 일과 남들이 봤을 때 내가 잘하는 일 사이의 접점을 찾는 그런 거.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이것저것 야금야금 건드려봤다면

당분간은 쉬면서, 정비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고
남들이 보는 ‘내 재능’이 살아나는 일이 무엇 일지를 고민해야 하나 싶었다.


이리저리 짧게 여러 일을 벌여보긴 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경험들은 ‘나답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여러 말을 들었지만, 신점이라 해도 가장 믿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내년 후반, 모든 것이 바뀔 거라는 말.
사람도, 일도, 환경도.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옷’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될 거라는 말.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준비의 시기.
조급해하지 말고,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으로 삼아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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