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관심사는 직군 전환
글쓰기클럽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브런치북을 만들어봤다.
하이아웃풋클럽의 마케터 와니님이 추천주셨던 목차 그대로 시작했다.
후반부로 가다보니 최근의 이야기와 맞물려 방향이 조금 틀어졌지만 그래도 10개 글로 완료했다.
글을 쓰며 했던 생각은 하나, 역시 손으로 쓰는 글이 맛있다.
중간에 저널 투고와 일정이 맞물리며 챗지피티의 힘을 빌려보았는데 글이 너무 재미없었다.
최대한 양질의 글을 뽑기 위해서 질문지 리스트를 달라 하고, 답변을 상세히 준 뒤
그걸 기반으로 초안을 구성해달라 했는데 그래도 재미가 없었다.
완성본이 내가 쓴 글에 비해 퀄리티가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의 글쓰기란 목표나 성과를 위한 글이 아니다보니 일상을 되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목적이 가장 큰데
그게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글조각을 기우는 일을 챗지피티에게 맡기니...정리가 될리가.
글은 정리가 되어도 내 머릿속이 정리되진 않는 것이었다.
정해진 틀에 맞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브런치북 글을 쓰는 동안에는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야했다.
당장 오늘의 꼬인 생각을 풀기 위한 글쓰기만 하던 나에겐 이부분이 좀 어려웠다.
글의 퀄리티를 높이려면 역시 양질의 인풋을 넣어야함도 느꼈다.
논문을 쓰며 문장의 미사여구가 많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비단 미사여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갈한 문장을 잘 쓸 줄 모르나 싶었다.
술술 읽히는 문장. 불필요한 중복 설명이 없는 문장. 접속사, 조사, 단어...거창하지 않은 문장.
논문과 브런치 글은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술술 안 읽히는 문장이라는 건 동일한 것 같다.
논문을 잘 쓰려면 좋은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하듯, 브런치도 잘 쓰려면 좋은 브런치를 많이 읽어야지.
현재 커리어 계열로 전문성을 높이려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매일 숙제를 받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사람 적은 지방인 덕인지 젊은 잠재적 인재(?) 취급도 받고 있고.
어찌됐든 나만 잘하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다.
다만, 연구직 특성상 박사를 가야 미래가 있다. 사기업 R&D는 석사이상부터 뽑는다 해도
정규직 기회나 승진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가야하는 것이 박사이다.
현재로선 박사를 갈 생각이 없다. 정확히는 박사를 버틸만한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좀 더 나의 본성에 잘 맞는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놈의 전문성이 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전문성을 키우고 싶단 마음은 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데 내가 그런 류의 인간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초급에서 중급까진 수월하게 익히면서 중급에서 고급으로 가는게 참 어렵다.
그 구간을 견디고 뚫어야 한다지만...그게 너무 힘들면 다채로운 중급 스킬로 살아남을 순 없는걸까?
그걸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용 꼬리가 아닌 뱀 머리가 되어보고 싶은 이유도 있다.
우연찮게도 비슷한 수준의 동기 없이 일한 경험만 있다. 비슷한 부족함, 각자의 우수함을 나눌 동기 없이
어디로 봐도 벽이 느껴질만큼 우수한 분들과 일한 경험만 있다.
이런 조급함을 드러낼 때마다 '내 10년 경력을 1년만에 따라잡겠다는 꼴이다, 너무 높게 보지 마라.'
이런 류의 말을 들었다.
당연한 말이다. 이해되는 말이다.
그런데 매일 보는 환경이 그런 우수한 인재들 뿐이라면 조급함이 안 생길 수 있는가?
긴 세월 묵묵히 쌓아올려야 함을 머리로 아는 것과 온전히 견디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지금의 내가 살아내는 매일이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계단식 성장을 위해 견디는 과정임을 알지만
언제까지 계단의 가로선만 걸을건지 싶어 참 답답하다.
세로선을 만났는지도 모르겠고, 만났는데도 내가 모른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같기도 하고.
혀가 길었다. 결론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필드가 다른곳엔 없는지 찾고싶단 말이었다.
그러려면 1년이라도 더 늦기 전에, 지금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지난 한 주는 논문 투고 후 리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채용 공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한 직군 전환을 위한 전략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다 내버리고 바닥부터 시작하기.
다른 하나는 기존 경험의 교집합이 존재하는 다른 업무로 갈아타기.
당장 조급한 수준의 환경은 아니다 보니 우선은 후자의 전략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IT계열에서 쌓은 배경지식이 무쓸모하진 않되 업무는 연구와 결이 다른 곳으로 가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요즘 취업시장이 어디 쉬운가?
어렵다어렵다 하지만 어느때보다 경력을 필요로 하는 시장임을 느낀다.
중고신입 내지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건 꾸준히 있어 온 일이다.
신입 온보딩에 들일 자원이 없고, 당장 내일부터 실무 투입 가능한 사람을 뽑고싶기야 하겠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때 요구되는 '경력'의 빡빡함이다.
예전에는 직군 전환, 신입 취업 시 '경험'을 어필할 수 있었다.
모두가 회사에서 경험을 쌓을 수는 없으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 부트캠프도 참여하고.
원하는 경험을 직접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쌓아 회사에 어필하는 거다. 나는 경험 있는 신입이라고.
이런 식으로 쌓은 포트폴리오로 2-3년차 공고까지는 비빌 수 있었다.
최종 결과는 몰라도, 서륲 전형은 통과 가능했단 소리다. 부트캠프의 현직자 멘토들도 일단 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게 통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경력 1년이라 적혀있으면 진짜 회사 경력을 말한다.
유관 경험 2년치도 무쓸모하다. 실제 사이드 프로젝트로 성과를 냈대도 우린 실무 경험자만 받는다며 자른다.
괄호로 '회사 경력'이라 써뒀으면 양반이고, 써두지 않아 내봤더니 서류에서 광탈된다. 문의해보면 실무 경력만 받는다는 답이 돌아온다.
자격 요건에 경력 1년 써놨는데 왜 냈냐고? 옛날엔 낼 수 있는 공고였으니까.
이젠 넘을 수 없는 허들이라는 거다.
그래도 어떡해. 내 봐야지. 최대한 가진 경험을 끌어모아 포트폴리오란 걸 만들었다.
사실 만들 거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백수 2년간 내가 꽤 많은걸 했다 싶더라.
2년간의 경험을 모아보니 기획, 운영, 콘텐츠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그래서 연구경력을 살리되 위 세 가지 키워드와 교집합이 있는 직군 위주로 공고를 보고 있다.
물론 낼만한 일자리는 수도권에 많으나 최소 1년간 거주지 이동이 어려워 대부분 낼 수 없다.
재택이나 프리랜서는 경험 많은 경력이 필요한 일들이 많고.
그래도 그 몇 안 되는 공고들을 찾아 넣어보는 중이다.
이미 서류에서 잘리는 양상을 보니 잘 될런진 모르겠으나 내보기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대단한 성과는 아니어도 건덕지라도 있다는 것이 꽤나 신기한 부분이다.
아예 텅 빈 이력서로 덤비는 것보단 뭐라도 써서 어필해볼 수 있는게 다행이지 않나 싶다.
날이 무덥다. 일이 바빠 정신을 바짝 조이다가 풀어지니 집중력이 흩어져버린 요즘이다.
그래도 다음주엔 좀 더 집중해야지. 커리어 전환이 최대 관심사라 마음이 붕 뜰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는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회고를 하고 싶다.
양질의 인풋을 넣고 싶다.
하고 싶은 거, 하다못해 재밌는 거라도 있었으면 싶다.
잔잔한 자극을 주변에 두고 다시금 빠져들 한가지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