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정보성 콘텐츠 발행의 어려움
요즘 세상에 AI만큼 핫한 키워드가 또 있을까.
유행 따라 간 건 아니라지만 내 대학원 졸업장에는 '인공지능'이 떡하니 박혀있다.
입학할 때는 컴퓨터학과였는데, 어차피 커리큘럼이 AI 중심이었던지라 졸업학기에 학과명이 개편되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세상은 내 전공을 참으로 사랑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나온 지는 꽤 되었지만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대중에게 하루가 다르게 친숙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AI와 AI기반 서비스가 나와서겠지.
덕분에 어딜 가서 '취준생인데, AI 전공했어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뜨겁다. "오 요즘 유망하잖아요!" 라거나, "취업은 걱정 없겠다!" 아니면 "그럼 Chat-GPT도 잘 알아요?" 20명에 19명 꼴로 요 세 가지로 분류되는 리액션이 돌아온다. 나는 그 앞에서 머쓱하게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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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반응이 뜨겁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나의 전공을 쫌쫌따리 써먹고 있다. 지금처럼 브런치에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고, 인스타툰 프로필에도 어쨌든 AI 취준생입니다-라고 써두었다. 관련 콘텐츠는 아직 없지만.
그렇다. 생각보다 콘텐츠를 많이 만들진 못했다. 막상 만들려고 하면 자기 검열이 어마어마하게 덮쳐온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전공 이야기하는데 민망해하고 회의적일까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자기 검열이었다. 그리고 이건 대학원 생활이 나에게 준 부작용 중 하나라 생각한다. 무슨 자기 검열을 말하냐? 생각나는 것만 간단히 말해볼까 한다.
나의 자격에 대한 검열. 그냥 말 하나 하는데 무슨 자격을 따져가며 검열씩이나 하냐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어쨌든, 민망하니 마니 해도 나는 ‘AI석사’라는 명패를 자격증처럼 프로필에 전시하고 있다. 마치 제가 말하는 인공지능 이야기는 전문성이 가미되었어요, 그리 말하려는 것처럼.
일단 소개로 적어둔 이유 먼저 말하자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자기소개 키워드라서 이다. 미안하다. 콘텐츠 만드는 입장에서 후킹 포인트를 놓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바보 백수일 뿐이라며 구구절절 설명해도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렬히 박히는 것은 ‘A I 석 사’ 네 글자다. 그 무엇보다 명료하게 나를 설명해 주는 몇 안 되는 단어이다. 소재도 사람들이 관심을 참 많이 가져주는데 안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동시에,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의 소개를 듣는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우와 석사면 공부 많이 하셨겠다~전문가다 전문가!" 정작 동기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정반대다. 전문가는커녕 석사 나부랭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우매함의 봉우리에 대한 그래프를 혹시 아는가?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한 그래프로 잘못 알려진 그 그래프가 맞다. 수많은 버전의 그래프 중 학부생 - 석사 - 박사 - 교수 네 단계로 지식의 정도와 자신감에 대한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도 있는데, 원본이 잘못된 그래프이든 아니든 그 패러디 짤만은 참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학부를 졸업하고 자신감에 차서 대학원에 오면,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나는 아는 것 하나 없다는 절망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자신감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졸업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석사다. 나 진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이걸 2년 내내 외치다 끝나는 거다. 척척박사라는 말은 있지만 척척석사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난 아는 거 하나 없는 나부랭이구나 - 그렇게 석사 나부랭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 것이다.
2년간 바보천치임을 격렬히 깨달은 채 학교 밖으로 나왔더니, 세상 사람들이 날 전문가라고 말해준다. 괴리감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는 것 하나 없는데, 박사는 아니어도 일반인보다는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게 맞나? 차라리 비전공자지만 AI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전문성이 있을 것이란 생각만 든다. 내가 뭐라고, 전 모르는데요! 자신감 없이 회피하고 다니게 된다.
바닥을 뚫고 심연으로 가버린 전공에 대한 자신감은 아직 못 찾았다. 그냥 저는 석사 나부랭이입니다. 당신의 기대만큼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 말을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입에 달고 다니거나,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것이다. 대학원에서의 2년이란 시간은 사람 하나의 자신감을 짓밟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레퍼런스, 레퍼런스, 그리고 레퍼런스. 토씨 하나 틀리면 미친듯한 크리틱이 날아오는 전쟁터가 대학원이다. 점 하나, 대소문자 하나 틀렸다고 한 시간 동안 눈물 쏙 빠져본 적이 있는가? 말 한마디 했다가 그 근거에 대한 자료와 확신이 부족하다고 미친 듯이 까여본 적이 있는가? 대학원에서라면 숨 쉬듯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그게 맞는 일이고. 내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한 치의 거짓이 있어선 안 되니까. 또 점 하나, 대소문자 하나에 의미가 180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문제는, 나의 경우에는 여기에서 오는 자기 검열이 심하다는 거다. 말 한마디를 해도 단어 하나를 써도 ‘이게 맞는 건가?’ 습관적으로 검색해 본다. 원래도 신중한 성격이 신중에 신중을 더해버렸다. 혹시 내가 말한 게 틀린 거라면?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진실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내가 본 자료가 잘못되었던 거라면? 이 모든 게 카더라에 불과한 거였다면? 단어를 내가 잘못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거라면? 말 한마디 뱉는데 머릿속은 팽팽 돌아간다. 그러다 못해 말이 나오다 멈춰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회의 중 설명을 하다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적이 있었다. 연구원님이 “말 잘하다가 왜 갑자기 멈춰요? 설명 잘하고 있었는데." 라며 너털웃음을 짓고 마시긴 했지만, 그때가 논문을 쓰느라 1:1 미팅 때마다 무슨 말만 하면 미칠듯한 크리틱을 받았던 시기라 그 순간에도 ’ 내가 지금 말을 똑바로 하고 있나? 나 또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나? 말이 이상한가? 용어가 맞나? 이 식이 맞나?‘ 생각이 과열되어서 정말 나도 모르게 멈춰버린 거였다.
뭐, 그 정도까진 아니라지만 지금도 정보전달 목적의 발화를 할 때면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 주관적인 의견은 정답이 없으니 편히 말하면 그만이지만, 정보 전달 목적의 콘텐츠를 만들 때면 그 정보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아 시작을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자기 검열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이쪽으로 취업하려고 마음도 먹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몇 년을 공부하면서 ‘내가 이 필드에 맞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나는 동기들과 달리 신기술의 발전을 무작정 흥미로워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 그런 유형의 사람을 아는가?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이 갑자기 엄청난 인기를 얻고 메이저가 되면 괜스레 식게 되는 사람. 밈이 등장하면 일단 써먹고, 챌린지 새로 올라왔다고 나도 따라 찍어야 하는 사람들의 저-반대편에 있는 사람. 새로운 뭔가가 생기면 냅다 익히기보단 경계부터 하느라 얼리어댑터는커녕 트렌드 팔로워조차 되지 못하는 그런 느릿한 사람. PASS앱조차 안정성을 의심하느라 3년 넘게 쓰지 않았던 사람. 그게 나다. 나한테 AI가 좀 그런 느낌이다. 특히 챗지피티라는 글로벌 톱스타급의 이 녀석. 괜스레 반감 먼저 든다.
얜 뭔데 그렇게들 열광하지? 편리하고 좋고 다 알겠는데 이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건가? 학습은 뭘로 했지? 웹데이터면, 저작권은? 내용에 대한 윤리성은? 검증은? 아니 일단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인데, 이 도구가 무지막지하게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르면 도태되고 적응하는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식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콘텐츠와 강의들…그런 게 넘쳐나는 게 맞나? 이런 생각들.
그냥 내가 부정적인 사람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대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신기술이 나오면 걱정이 한참 앞선다. 이전에 작성한 ‘AI는 밉지 않다, 사람이 미울 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작성한 글이다.
아무튼…이 AI라는 게 핫해지고 관련 서비스가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은 것 같다.
AI 사진합성 어플이란 건 남의 인스타 셀카를 그대로 긁어와 얼굴만 바꾸질 않나, 비윤리적인 발화들을 거르는 기술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벽하게 막지 못해 인터넷의 혐오표현을 그대로 학습한 챗봇이 나오질 않나. 그림을 그려준다더니 알고 보니 남의 그림을 무단으로 가져다 학습한 인공지능이질 않나. 그런데 이런 지적은 기술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신기하니 일단 쓰고 보는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혼란 그 자체라 더더욱 달갑지 않은 것 같다.
구구절절 말이 많았다.
결론은, AI석사라는 명패가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제법 좋은 간판이라 생각해 달고 있으면서 동시에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혹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 그 두려움이 더 커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꺼려 진단거다. 모순적이라고? 정답이다. 거기에 더해서 인공지능 자체가 관심 가고 흥미롭기보다 일단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콘텐츠를 만들 의지가 떨어진다는 개인 선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어쨌든 관련 업계로 취업할 거라면 이런 태도는 마이너스일 뿐이니까. 지금의 태도는 어떤 식으로든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차라리 ‘챗지피티와 친해지기’ 시리즈 같은 걸 만들까? 싶은 생각도 있다. 이 녀석이 무엇으로 학습했는지, 어떻게 생긴 모델인지 등등 하나하나 알아보는 거지.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드는 막연한 거부감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한 글을 쓸까 봐 겁이 난다는 거지만…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도 친해야만 한다면, 내 나름의 방법으로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빠른 시일 내로 고민해 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