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왔니? 반가워!
2024년 5월 2일
오늘도 5시 새벽 기상과 함께 1시간 30분 글쓰기 몰입에 들어갔다. 작심삼일의 마법이 귀신같이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어제까지 나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이걸 써야지 했던 것과 달리 오늘은 쓰고 싶은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도 따듯한 차를 마시고 적어두었던 목차를 둘러 보고 하나를 골랐다.
나서기 엄마와 소심쟁이 아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저리주저리 3장 가까이 알맹이가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태어난, 여전히 하루에 버스가 3대밖에 들어가지 않는 시골 깡촌마을 이야기에서부터 내 아들의 이야기까지, 이 귀한 시간에 정성 들여 써도 모자랄 판에 그냥 쏟아내기만 하고 있다.
아니 그러면 그냥 쏟아내는 거지 뭐 하나하나 주옥같은 글이 나올 거라 기대했던가? 아주 지킬앤하이드가 따로 없다. 어쩌겠나. 건질 것이 하나 없는 초고일지라도 나는 일단 시작했고 써 내려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슬기로운 작심삼일 대처 방법
야! 너 작심삼일 드디어 왔구나.
어 반가워!
그렇지만 뭐 어쩌겠니. 너가 와도 나는 계속 써야지 뭐!
그러니 올 때처럼 조용히 니 갈길 잘 가렴.
나는 내일도 쓸 거란다. 우리 또 만나지 말자. 그럼, 이만!
내 삶에 힘이 되는 니체의 말>, 임성훈
사람들은 종종 위인과 영웅을 만들어 내고 미화한다. 그 사람의 어머니는 자식을 가졌을 때 비범한 태몽을 꾼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영특함과 재능을 보인다. 동서양의 공통적인 클리셰(cliché)다. 그 사람은 특별하기에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지만, 나는 평범하기에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초라한 자기를 합리화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전 속 위인들의 모습은 가공되고 위조된 게 아닐까?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우상에 속지 말고, 남들이 해낸 것은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글을 쓰며 내면의 나도 들여다보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볼 때가 많아진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나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