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각자 수많은 판단을 내리며 바쁘게 그리고 힘들게 하루를 살아낸다. 많은 판단을 내리지만 과연 생각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생각의 범주를 넓게 보면 모든 판단이 생각에서 나오지만 생각은 내가 판단을 내리기 전후에 마음속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판단은 대부분 생각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계산에 의존하고 있다. 계산이 빠른 사람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계산이 빠르기 때문에 판단이 앞서고 그 판단에 후회가 없고 자신이 넘친다.
나는 이공계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으로 20년을 일하였고, 지금은 AI 빅데이터를 연구하는 데이터 사이언스이다. 계산에 능통하며 하루를 계산으로 시작해서 계산으로 끝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매사에 나의 계산이 옳고 정의라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그리고 계산이 약한 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키며 승리를 즐기며 살아왔으며 정의를 구현한 것이라 믿어왔다.
어느 날 성경에 사도바울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는 흑암에 던져진 후에 말씀이 보이기 시작했고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교회는 나가지만 가장 끝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예배 시간을 보내고 아무런 마음의 어려움조차 없었던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매우 기적적인 일이다. 또한 계산이 빠른 나는 누구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내 판단을 더 믿고 신뢰했다. 하지만 말씀이 보이고 들리니 이제야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성경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모든 계산적 판단을 악이라 규정하고 있었다. 이유는 성경 한 구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9장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가복음 10장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어떤 한 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와와서 생명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라고 말하자 바로 꾸지람을 듣습니다.
예수님께 선하다고 말하였고, 선생은 이 당시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을 하고 있지만 꾸짖음을 듣습니다. 이 청년이 거짓을 말하여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의 계산적 판단과 행동을 꾸짖었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누구기에 선함을 판단하느냐~ 네가 누구기에 나를 선생이라 부르느냐~ 성경은 사람이 판단하는 말들을 매우 경계합니다. 다음 상황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이 청년은 또 판단을 합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산을 하는 것보다 생각을 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지켜왔지만 부족한 것은 없는지 혹은 내가 지킬 수 없는 것들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상황을 보면 정확히 알게 됩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님은 네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 나눠주는 것인가요?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근심했다고 하는 것은 계산적 판단이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는 득과 계명을 지키고 자신의 재산을 잃는 실 앞에 계산을 해보니 근심이 생기고 그 자리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계산적 판단을 하며 살아갑니다. 위의 청년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며 성경은 일관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계산적 판단으로는 결코 절대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청년이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 앞에 저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요즘 혼란한 정세를 보십시오. 정부, 여당, 야당, 국민 모두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계산을 하고 계신가요? 모두가 살기 위해 계산적 판단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저는 무엇이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할 수 없으며 모르겠습니다. 저의 계산적 판단으로는 대통령이 퇴진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결국 각자의 계산적 판단하에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의 반복일 뿐입니다. 저는 단 한 가지 외치고 싶습니다.
계산하지 말고 생각해 보라.
온 우주와 만물이 운행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어젯밤에 내가 숨을 멈췄어도 마땅한 내가 오늘 숨을 쉬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