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70-
누나야 어제도 앞산이 하얗게 그렁거렸다
기억나나, 나는 열셋 누나는 열일곱
함초롬한 여름밤 칠흑 속에
온 사방 흩뿌려진 싸라기별 새로
눈 어두워 어쩔 줄 모르고 헤매다가
저기 봐라 저기 좀 봐라 가리키는
누나 손끝 따라 북두칠성 찾아서
일렁일렁 은하수에 몸 맡기고
북극성으로 닻 내리던 날
단발머리 달이 건넨 인사에
우리 둘 부끄러워 키득거렸지
하늘 하나 읽을 줄 모르는 것도
그때는 큰 흠이 아니었다
허나 터울보다 궁기가
물려오던 논둑보다 나락이 깊어
자식 키우듯 한 농사가 종잣값도 안 나오던 날
도정 마친 낱알은 흙바닥에 별처럼 쏟아지고
아빠는 무릉도원에라도 갔나 볼 수가 없어서
살림보다 빚이 큰 엄마도
손님들이 주인보다 늘 배부르게 채우고 돌아서는
이 사나운 동네로 건너와
삯일 막일로 매일 지쳐 잠들길 택했지
우습지 않나, 입을 줄일 사람들은
더 많은 벌린 입들 앞으로 나아가고
떠올려볼수록 얼굴보다 뱃속이
울렁울렁 가까이 밀려오는 일
그거 아나, 오밤중에 다락에서
인형 눈알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보고픈 얼굴은 보이질 않고
손에 말 없는 달만 물씬 젖어든다는 거
누나 없는 밤은 돌탑에 단 깃발처럼 서러워
하얀 산에 대고 소리쳐봐도
산은 입이 굳어 아무 말도 못 전해주고
밥을 짓고 그릇 나르고 바닥을 닦는 여인들
보름만 되면 햅쌀밥마냥 창백하게 빛나는 달
뻐끔뻐끔 숨 쉴 환풍구 되어도
서로 똑같이 등 굽고 눈 흐리고 손이 젖어
남긴 음식처럼 바닥에서 식어가는데
별도 없어 읽히질 않는 하늘엔 아무도 부끄러워 답을 못한다
누나야 이 조용한 밤에 앞산은 하얗게 하얗게 속으로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