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1-
주말을 틈타 종로 자취방에서 몇 달 만에 안산 본가로 향했다.
내가 태어났던 이 아파트는 재개발을 앞두고 단지 내 거의 모든 세대가 이주한 상태지만, 우리 가족들은 마치 와병하던 할아버지의 침상을 지킬 때와 마찬가지의 기분으로, 익숙한 얼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나서 천천히 움직이는 데 동의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저녁을 먹고, 장대비가 두툼한 커튼처럼 빈집과 아직 남아있는 집들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베란다 바깥으로 보다가, 재작년 태풍 때 놀이터 방면으로 쓰러졌던 가로수 옆으로 탈 사람도 없이 몇 년째 매어둔 녹슨 두발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저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공유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서울이야 이제 자전거 훔쳐갈 일이 딱히 없다 쳐도, 안산에서 사는 동안 수두룩한 자전거 도둑들 등쌀에 긴장의 끈을 놓지도 못하던 게 어제 같은데, 그새 다들 낡은 자전거 같은 건 필요가 없어진 건지 아니면 그 많던 도둑들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린 건지, 나는 이곳을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가로등이 또 하루 어둠을 탁 켜던 그때, 저쪽에서부터 우산을 쓴 어떤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다가 자전거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기에, 설마 이제 와서 자전거에 손을 대려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그는 술에 좀 취했을 뿐, 자전거 옆 풀섶에 오줌을 누고 비칠비칠 가던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며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이튿날 아침, 비는 그치고, 엄마는 내가 서울 간 이후 본가 남은 가족 중에 자전거 탈 사람도 없어서 열쇠를 어디 뒀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하며, 체인도 늘어지고 기어도 안 먹혀서 아마 탈 수도 없을 거라고 확인을 해줬다.
나는 문득 엄마랑 같이 맨 처음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갈아타던 그 저녁의 긴장감과 뿌듯함, 그리고 해방감 같은 자전거 도둑이 결코 훔쳐가지 못할 추억을 떠올려보며, 이주하기 전에 다시 한번 와서 열쇠를 직접 찾아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철역으로 나섰다.
그리곤 단지 앞 주차장 한가운데 아스팔트를 가로지르고 있는 올해 첫 달팽이가 다칠세라 집어다가 자전거 옆 풀섶에 옮겨다 주며, 역까지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가면서 이 얼마 남지 않은 동네의 풍경을 몰래 두 눈에 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