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75-
늘 주말이다, 평일은 무슨 의미랴
탑골 앞에선 보이지 않는 낙원 문턱을 맡을 수 있다
정오 직전 피부과 다녀오던 길
유진식당 설렁탕과 국밥은 아직 칠천원이고
약을 먹기 위해 그닥 고프지 않아도 냉면을 시킨다
보이지 않는 식당 주인은 훈장을 패용했다
허나 지난날들 모두 훈장이라
마치 세관에서 가방에 얹어놓아 일말의 친절을 기대해볼 만한
딱 그 정도의 시간, 저편에서 웬 머리 땋은 백인이
장기판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잔나비처럼
둘러앉은 입꼬리들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육고기와 삶은 계란을 같이 나온 무와
곁들여 먹는다, 소리 내던 짐승들이 조용하던 식물질에
감싸이고, 짭짤하게 간이 된 물이 들이닥쳐
그릇을 비워간다, 식사하는 동안에도
벽 건너편 보이지 않는 곳에선 다시
그릇을 채우고 있으리라, 여기서 지나쳐온 것이 제일
적은 자에겐 아직 허락되지 않은 것
설령 오랜 발걸음이 지나 허락되더라도
그때 가선 지금과 다시 같은 끼니를 누릴 수 없음은 자명하기에
말없이 비운 그릇을 두고 카드 대신 현찰을
주인 아들에게 건네며 고개를 틀면
근지럽도록, 오래 살라는 국수면발처럼 길게 늘어선
모자들, 어디 하나 모자랄 구석 없이 돌담을 따라
종삼 골목 안쪽으로 이어이어지고 있다
딛고 선 바닥에는 일말의 오줌 지린내
열 걸음도 안 될 거리, 주인과 객의 모습 유리에 겹쳐드는 찰나
주말은 무슨 의미랴, 장기판에서 따먹은 말 하나
손에서 미끄러지고, 붉은 살결과 붉은 모자가
동심원을 그리며 꼬리물기에 나서는 동안
약봉지를 들고 슬리퍼에 반바지 파카를 둘러입은 걸뱅이
해진 가슴팍이 늘어선 거죽들을 더 하얗게 빛내며
숟가락 위에 온 길바닥을 세워놓고 있다, 젓가락도 없이
어느 각도에서 올려보아도 석탑은 유리 안에 앉아있을 뿐
자리가 나기까지 나돌지 말고 가만히 탑을 흉내내다보면
가져온 짐 바닥에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산채비빔밥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니
소리 내던 짐승들이 조용하던 식물질에 감싸이고
미지근한 맹물이 들이닥쳐 빈속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간다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저 주방에서 채운 그릇 삽시간에
다시 비워지고 있으니, 여기까지 지나쳐온 것이 제일
많은 자가 마침내 허락받은 것
가방에 허락받은 일말의 친절을 기대감과 함께 얹어놓은 채
다시 없을 끼니를 고개 숙인 채 말없이, 그러나 자랑스럽게도
내려보낸다, 정오 갓 지나 이제 다시 더울 일만 남았고
사람은 자기 발바닥만큼만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