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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

-소월삼대목 82-

by 김병주

이제 한철뿐인 꽃을 노래하지 말기로 하자 주말에도 불이 꺼지는 남태령의 신호소 없는 밑바닥 구경꾼들은 앉아만 있어도 얼굴이 상기된다 천둥 속 적막이 빛내는 얼굴들

지난 나절 사온 알뿌리의 이름은 혼자 간직하기로 하자 숨겨둔 시간보다도 육중해진 비밀 서랍 속 알뿌리에게는 깨어있을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몇 곱절은 길다 집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거대한 뿌리의 밑동

공원에도 과수원에도 앓는 사람이 몸 둘 곳 마땅치 않다 자리를 양보받아 무럭무럭 자라는 태중의 그늘 약을 팔던 부부는 그곳에 산을 하나 구매해 별장을 지었다 원 바깥으로 실려나가는 환자들

지하에 내기꾼들 불콰한 얼굴로 우르르 몰려든다 지반이 단단할수록 내기가 쉬워지는 법 볕을 못 받은 알뿌리는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시들기 시작한다 창이 된 얼굴들 더욱 빛나고 알뿌리는 깨어나는 과녁에 눈 맞추며 활시위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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