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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Feb 08. 2024

최연소 단골손님

어린 시절의 추억

5살 꼬마 손님이 있었다.
보통의 꼬마 손님들은 치즈파이나 초코파이를 선호하는데 이 특별한 친구는 호두파이를 좋아했다.

그 당시는 파이집이 4시에 닫을 때였다.
간혹 단체 주문 준비로 6시 넘도록 열려 있을 때면 이 꼬마 손님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6시 넘어서 유치원에서 데려오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따라 파이집에 온 첫 만남에서 이 꼬마 손님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수다쟁이었다.
문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인데요! 5살이에요!
사랑유치원 님반이에요! 엄마랑 호두파이 사러 왔어요! 호두파이 하나 주세요!"

엄마가 말릴 틈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와다다다 쏟아냈다.

그날부터 우린 친구가 됐다.


..............

가끔 6시 넘어까지 파이집을 열어둘 때면 난 꼬마 손님을 기다리게 됐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났다.

사실 처음엔 대부분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속도가 빠른데 비해 발음이 부정확한 아가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다시 물어보고 싶었는데 못 알아듣는 게 미안해서 못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다시 알아낼 수 있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녀의 다음 방문 때 물었다.

"친구야! 혹시 한글로 이름 쓸 줄 알아?"

"네! 저 글씨 잘 써요!"

냉큼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종이에 끼적였다.
짜잔 하고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 당황스러웠다.
내 능력으론 읽을 수가 없었다.


..........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어봤다.

"친구야, 이 글씨 뭐라고 쓴 건지 한번 읽어봐 줄래?"

"라원! 정라원!"

"아! 라원아 고마워! 맛있게 먹어~"

그렇게 꼬마 단골손님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동안 엄마는 뭐 했냐고?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독립심 강한 라원이가 혼자 호두파이를 사 오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엄마는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라원이는 이후에도 수많은 TMI를 방출했다.
아빠랑 파이집에 온 어느 날, 라원이가 말했다.

"이짜나요~어젯밤에요! 어~엄마랑 아빠가 싸웠는데요~ 어~ 큰소리를 질러서요~ 라원이가 깜짝 놀라서 울었어요!"

당황해서 슬쩍 아빠를 봤는데 이미 많이 당해봤는지 해탈한 표정이셨다.

나는 말없이 호두파이를 결제해 드릴 수밖에....


......................


시간이 지나 라원이에게는 아기 동생이 생겼다.

생생하게 그녀의 아기 동생의 일상을 듣곤 했다.

아기 동생은 매일 운단다.

매일 엄마가 안아주는데도 매일 운다고 했다.

라원이 귀는 너무 시끄럽다고도 말해줬다.


라원이가 7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 가기 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단다.

다른 동네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며 앞으로는 호두파이를 못 사러 온다고 했다.


나에게 울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이별은 언제나 마음에 남는다.

내 마음속엔 여전히 5살 꼬마 아가씨.


라원이와의 추억을 되짚어보니 나도 어릴 때 단골 가게가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

요새는 학습 준비물을 거의 학교에서 지급해서 학교 앞 문방구가 많이 사라졌다.

우리 땐 소소한 것도 모두 직접 준비해 가야 했는데 덤벙거리던 나는 까먹기 일쑤.

학교 가서 혼날까 봐 울면서 문방구에 가면 주인아줌마가 달래 가며 챙겨주셨다.
알고 보니 엄마가 미리 외상값을 맡겨두셨던 거였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귀해서 심부름을 잘 안 시키기도 하고 대부분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해서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이 적다.

파이집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파이 이모가 내 어릴 적 문방구 아줌마처럼 따뜻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원이는 이제 10살이 됐을 거다.

라원이는 파이 이모를 기억할까.

종달새처럼 사랑스럽던 그녀를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라원아~어디서든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렴!

언젠가 엄마 따라와서 또 만나자.

아기 동생도 데리고 와~

우리 그때 또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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