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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May 30. 2024

사과할 마음이 사라졌어요

긍정 훈육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시선의 끝이 머무르면 사랑이라던데. 우리 반에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녀석이 한 명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이내믹한 날을 선사해 주는 아이. 오늘도 나는 조용히 상담 일지를 적는다.


 오잉? 선생님 반 아이들 이름이 많네?
공부 잘한다고 하지 않았어?


 초등 3학년과 6학년은 표준화검사를 친다. 표준화검사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 및 발달 단계를 측정하기 위한 검사다. 올해 우리 학교 3학년 학생은 성격 5 요인 검사를 쳤다. 검사 문항은 100여 개로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적어도 몇 주에서 길면 한 달까지도 걸린다. 아이들은 검사가 끝나면 잊고 살지만 나는 한참 동안이나 결과를 기다렸다. 이제 겨우 5월인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싸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행복 지수가 낮은 아이'라는 항목에 우리 반 12명의 어린이가 이름을 올렸다. 학업 성취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22명의 중 12명이 행복하지 않다니. 불안도가 높은 아이, 흥미가 낮은 아이, 귀찮음을 잘 느끼는 아이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많이 보이는 건 바로 두두(*)였다.

 



선 넘으면 다 내 거

출처: 검정고무신

 

 "네가 내 경계를 넘었잖아."


 4월에 있었던 성폭력 예방 교육을 들은 이후 두두는 '경계'라는 말에 푹 빠졌다. 두두는 경계가 분명한 어린이다. 짝으로 앉았을 때는 책상을 넘어서도 안 되고, 마주 보고 앉았을 때는 발이 닿여서는 안 된다. 본인 몸에 손을 대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짝이 이성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친한 동성 친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하루 만에 멍이 더 심해졌다..휴...


 대부분의 문제는 쉬는 시간에 생긴다. 두두가 돌돌이와(*) 밀고 당기며 노는 것을 목격했고 지도했더니 4교시 쉬는 시간에는 내 눈을 피해 놀았다. 네 명의 아이들과 상담을 해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사건은 두두가 머리를 부딪힌 데서 시작된다.


 두두는 놀다가 한순간 중심을 잃었고 넘어지며 서순이(*)와 머리를 부딪혔다. 두두는 화장실에 상태를 확인하러 갔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달려가 돌돌이를 때렸다. 이를 목격한 왕자(*)와 애플(*)이 두두를 저지하려고 했고, 두두는 애플의 팔뚝을 냅다 물었다. 다른 어린이들의 선한 의도는 사라졌다. 자신의 몸을 만졌고 경계를 침범했다는 것에 두두의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폭력적이면 안돼."

"네가 괴롭힘을 받아도 친구들이 도왔을 거야." 


 최대한 진정성 있게, 차분하게 타일렀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두두가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랐다. 하지만 두두는 급식도 거부한 채 교실에서 버텼고, 아이들을 인솔한 뒤 교실로 쫓아왔을 땐 이미 집에 가버린 상태였다. 곧바로 두두 어머님과 상담을 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얘기하기로 했다기에 한시름 놓았다. 날이 밝았고, 어느 때보다 출근길 마음이 급했다.


"두두야, 어제 어머니랑 얘기 나눴다고 들었어.

이제 용기 내서 사과해 볼까?'

"어젠 그랬는데요. 하루 지나서 사과할 마음이 사라졌어요."




대화 좀 할까

출처: 과학 교과서

 두두가 이런 문제 행동을 보인 게 처음은 아니다. 이 학생을 잘 관찰해야겠다 생각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과학 모둠 활동을 할 때였다. 큰 소리가 나기에 봤더니 두두네 조였다. 아이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두두는 아이들을 막아서고 수조를 뺏어 안고 있었다. 두두는 엎어서 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혹시라도 먼지가 쌓일까 싫다는 것이다.


 학기 초에는 이런 발상이 신박하다고, 괜히 어린이의 영재성을 그르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관찰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고집 때문에 두두는 놓치는 게 많아졌다.


 비교적 오랫동안 강조되는 트렌드가 있다면 협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소통 능력, 공동체 역량은 강조된다. 하지만 두두는 짝활동이나 모둠 활동을 할 때마다 감정이 상했고, 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을 가리지 않고 교실을 벗어났다. 하루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40분을 나오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죽고 못 사는 점심시간에도 매한가지다. 바로 뒤에 선 침구가 기침을 해서 침이 튀었다며 기분이 상한 두두. 2층 복도에 주저앉아버렸다. 42개의 눈동자가 굴러 다닌다. 학원 시간에 늦을까 안절부절못하는 어린이, 배가 고파 죽겠다는 앓는 소리와 "쟤 또 저러네"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호되게 지도했다가 오히려 친구들이 두두를 더 미워하게 될까, 홀로 뒀다가 혹여나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나. 스물한 명이 두두만 바라본다.

 



긍정 훈육으로 도울 수 있을까

 

 올해 여러 부담에도 불구하고 상담심리 대학원에 등록했고, 그 덕분에 너무나도 바쁜 한 학기를 보냈다. 지나서 보니 참 잘한 선택이다 싶다. 공부한 내용에서 바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나를 다시 추켜세운다.


 오늘은 칭찬과 꾸중, 그리고 긍정 훈육에 대해 간단하게 배웠다. 학급 긍정 훈육이나 비폭력 대화에 대한 연수가 많아서 궁금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하다. 결국 가장 힘든 건 그 녀석, 두두일 것이다. 얼른 여러 방법을 배워 우리 교실에서 적용해 보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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