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생겼다. 사실 취미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딱 한 번, 이제 겨우 키친클로스 한 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땅콩이 생겼다고 얘기하는 중이다. 심심할 때 먹는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일. 미싱을 배우고 있다.
사실 아직도 입에 익지 않는다. 미싱인지 미씽인지 발음이 어색하고, '재봉틀 다루는 법 배우기'는 너무 길고. 그렇다고 '소잉(sewing)'이라 하기엔 할머니의 코바늘이 먼저 떠올라 난감하다.
그런데 더 난감한 건 갑자기 생긴 물욕이다. 집에 재봉틀도 없으면서 예쁜 천부터모으다니.20년 만에 대구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맛보았다.
서문시장 2 지구는 보물창고다. 칼국수만 먹으러 다녔던 시절에는 몰랐다. 먼지만 풀풀 날린다고 생각했고, 휘황찬란한 패턴과 색감에 눈 둘 곳을 몰랐다. 그런데 미싱을 시작하려고 하니 이런 천혜의 환경이 따로 없다. 온라인보다도 저렴하고 다양한 원단이 쌓여있는 곳. 한 마에 4000원이면 신상 원단을 구할 수 있다. 보들보들한 요루원단도 8000원 밖에 안 한다니...! 대프리카를 견뎌낸 보람이 있다며, 여름을 잊은 자가 말한다.
미싱 초보들이여, 비쌀까 봐 걱정하지 말아요.
유아부터 노인까지
연령대 별로 즐겨 찾는 장소가 다르다. 10대에는 동성로에 갔고, 20대에는 삼덕동을 찾았다. 최근에는 김광석 거리, 신천시장까지 발을 넓혔다 다시 교동과 종로로 돌아왔다. 나이에 따라 '힙하다'라고 생각하는 곳이 다른 것 같다. 혹은 월세난에 따른 핫플들의 이동 때문일지도.
그런데 어떤 곳에는 뾱뾱 소리를 내며 힘찬 한 발을 내딛는 아이부터, 세월을 딛고 나가는 무거운 한 걸음 노인까지 모인다. 그게 바로 달성공원이다.
시내 한복판에 살 때는 서문시장에서 칼국수 먹고 달성공원 외곽 한 바퀴 돌고 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사를 간 뒤로는 그마저도 뜸해졌지만.
해 질 녘에 찾은 달성공원은 낯설었다. 생경할 만큼 짙은 녹음이 멋졌다. 여름보다는 또 한 단계 채도가 낮아 보기 편안했다.
달성공원에는 벤치가 많다. 등받이가 있을 것, 한눈에 메인 광장이 내려다 보일 것, 적당한 나무 그늘이 있을 것. 금방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았다.
경사진 산책로 옆에 있는 자리를 골랐다. 앉을자리는 짙은 그늘이 깔린 데 반해 눈앞에 놓인 곳들은 밝은 곳이었다. 경사 덕분에 산책을 하는 행인들은 이 자리를 빠르게 지나쳤고, 멀찍이 내다보이는 오색찬란한 의자에는 귀여운 어린이 손님들이 자주 앉았다. 나는 딱 적당히 외로울 수 있었다.
최근에는 소설을 즐겨 읽는다. 예전에는 강박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책만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을 읽으면 충만함이 차오른다. 사는데 알아두면 좋을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시간을 자의로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정유정 작가의 신간 <영원한 천국>이다. 상상 속 현실을 타자에게 이렇게 매끄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을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누군가 희극인이 천재라곤 하던데, 나는 소설 작가들이 그런 천재 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