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죠. ‘진심’의 사전적 정의는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입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당연하지’ 싶기도 하고,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점점 후자의 마음이 더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대상을 향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뭉클한 기쁨을 줍니다.
한 여성의 진심으로 설립된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이야기 역시 그렇습니다.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는 20세기 초 미국의 영향력 있는 수집가였습니다. 그녀는 조각가가 되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는데, 조각가보다는 수집가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지금이야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뉴욕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사실 뉴욕은 미술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20세기 초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당대 혁신적인 미술을 하는 유럽의 미술가들이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향했던 새로운 땅이 바로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이었습니다. 당대 신흥 부국이었던 미국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유럽의 미술가들이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그들의 작품을 대거 수집했습니다.
휘트니는 당대 미국의 미술계가 유럽의 미술가들에게 전폭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미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본척만척하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미국에서조차 자국의 미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미국의 미술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그녀는 뉴욕 맨해튼의 젊은 작가들을 위해 ‘휘트니 스튜디오’라는 작은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작품을 적극 소개했습니다. 그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스튜디오의 수수료를 받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자신 역시 작품을 많이 구매해 주어 미술가들이 재정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작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1929년 휘트니는 25년 동안 수집한 자신의 소장품 700여 점을 당대 미국 최고의 미술관이었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휘트니가 수집한 미국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휘트니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직접 미국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결심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유럽 미술로 향해있던 만큼, 어떤 이들은 그녀의 행보를 비웃기도 했지요.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 했던 휘트니의 진심은 결국 ‘통’합니다.
1931년 휘트니의 수집품으로 문을 연 휘트니 미술관은 이후에도 꾸준히 미국의 미술가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미술가들을 소개하고 작품을 소장하면서 미국 현대미술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미술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1973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휘트니 비엔날레는 그러한 미술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만든 대대적인 전시였는데, 지금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명성이 높습니다. 특히 단일 미술관 행사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여전히 뜨겁게 미국 현대미술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휘트니가 꾸준하게 지원을 해준 에드워드 호퍼 같은 당시 무명의 젊은 화가들이 오늘날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것을 보면 미국 현대미술에 대한 휘트니의 진심은 미술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을 만큼 많은 사람들과 ‘통’ 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진심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그 뭉클한 순간을 또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