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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Jan 02. 2024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_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 1991년(출처: MoMA)


  같은 모양의 두 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시계의 디자인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시침, 분침, 초침이 가리키는 곳까지 두 시계는 완벽히 동일한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펠리스 곤잘레스 토레스(Félix Gonzàlez-Torres)의 <무제-완벽한 연인(Untitled-Perfect Lovers)>이라는 작품입니다. 현대미술 작품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제목인 <무제>는 제목으로부터 연상되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슬쩍 ‘완벽한 연인’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이 작품이 분명한 의도와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성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이 같은 자리에 놓인 상태에서 동시에 건전지를 넣어서 시계 바늘이 함께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계, 같은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 시계의 바늘은 옆의 시계와 맞지 않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같았던 시간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생겨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차이가 벌어지고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곳을 향한 바늘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나 아닌 타자와의 관계라는 것 역시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하나의 모습으로 영원하길 열망해도, 결국 하나가 아니고 영원할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는 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슬픈 현실입니다. 나와 타자 사이에 놓인 많은 말들과 행위들은 언뜻 보면 너무나 실존하는 것들로 여겨지지만 실상 우리는 그 말과 행위들이 타자를 이해하는데 지극히 제한적인 도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도 상대방에게 완전히 가 닿지 못하는 말 대신 시계라는 사물을 통해서 갈망했던 영원성을 구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과연 세상에 완벽한 연인은 존재할까요?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사랑은 그의 연인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영원성을 획득했습니다. 건전지를 빼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계만이 영원한 일치를 이루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사랑은 변할까요? 어떻게 사랑이 변할까요?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실망, 슬픔, 분노, 절망 같은 것들을 통해 조금은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할 수 없고, 사랑으로 인해 나아가고, 사랑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다만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지는 말기로 해요. 인간의 세상에 완벽하고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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