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에 걸쳐 쌓인 브랜드의 명성 속으로
티파니앤코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티파니의 반지 케이스와 포장지의 색깔은 민트색이다. 그 민트색의 부스가 잠실 아레나 광장 한복판에 세워져 있었다. 반지 케이스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의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티파니 작품들은 단순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주얼리류가 아니었다. 하이엔드 주얼리라는 건 단순한 착용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예술로까지 번져가는 작품이다. 이번에 이 전시를 통해서 티파니앤코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주얼리로 표현되는 예술성이란 것을 대중에게 알려주었다. 친절하고 세련된 에티튜드를 가진 직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티파니앤코의 진가를 좀 더 편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한 전시였다.
전시회에 들어가면 아틀라스가 시계를 떠받치고 있는 조형을 가운데 두고 그 양옆으로 별무리가 펼쳐져 있는데 벽과 바닥은 모두 미디어아트 영상을 쏠 수 있게 되었다. 하필 아틀라스와 시계 조형을 이 전시회의 도입부로 둔 것은, 티파니앤코 브랜드가 시간을 들여 쌓은 명성을 떠받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전시 자체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아틀라스는 본래 하늘을 떠받치는 존재이다. 벌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만약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지 않다면 하늘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티파니앤코의 명성도 그와 같다. 전세계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중에서 아주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걸 티파니앤코의 자존심으로 하늘과 같다고 해석해보면, 현재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티파니앤코의 모든 사람들은 아틀라스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필 시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200년 가량동안 일궈낸 위상의 무게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간략하게 티파니앤코의 발전과 성장과정을 미디어 영상으로 볼 수 있었고 곧 들어가서 주얼리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것은 초창기 작품인데 후기의 아르누보 양식을 딴 작품들과 비교하면 절제미가 느껴진다. 꽃 모양과 왕관 모양의 브로치, 그리고 사람의 옆모습을 넣은 브로치인데 세 개가 배열된 방식은 마치 꽃과 왕관 위에 사람이 놓여 있다고 넌지시 전달하는 것 같다. 좀 더 화려한 편인 꽃과 왕관 모양 브로치 위에 상대적으로 단정한 사람 모양의 검은 브로치가 놓여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꽃잎 위에 화려하게 수를 놓은 것 같은 보석의 향연과, 꽃다발을 씌워놓은 것 같은 왕관 브로치. 만약 이 둘만 있었으면 고급스러움은 격하되었을 것 같은데, 검고 흰 사람 브로치로 인해 우아한 생명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샹들리에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한 브로치인데 이를 보면 중반부로 갈수록 창의성이 더 발현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우아함의 선을 제거하고, 그 위로 더 뚫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보석의 개수는 다양하고 색도 다채롭게 쓰였는데, 의도는 깔끔하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위에 있는 파란 브로치는 진주와 초록 빛깔이 나는 보석을 다소 비슷한 비중으로 배열해서 무게감을 주고자 한 게 엿보인다. 아래 것은 하나의 젬스톤을 주인으로 두고, 그 위에 크기가 작은 보석들을 배열해서 안정감을 추구했다. 화려한데 비해 깔끔한 곡선의 방향이 모티브를 정확하게 따라 구현하였다. 이 브로치가 낚시용 도구를 모티브로 하였든 아니든, 아직 중반부까지는 자연주의로 빠지지 않고 문명과 문화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쟌 슐럼버제의 작품으로 넘어가면 확실히 아르누보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비교적 깔끔한 편인 새와 커다란 젬스톤으로 된 작품이다. 새의 깃털의 방향이 각기 다른 깊이감을 주면서 뻗어 있다. 황금색 보석은 세로로 긴 편이라서 무겁지 않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미감을 자랑한다. 보석의 두께 때문에 음영이 짙게 지고, 날지 않는 새인데도 솟아 있는 깃털들 덕분에 가볍고 날렵하며 명랑하게 느껴진다. 보석을 물고 어딘가 이동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새가 금방이라도 날 수 있는 것처럼 얄쌍하기 때문일까. 보석이 워낙 커서 그 위에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지만 다시 날아오를 자세이다. 황금의 나라로 인도해줄 수 있는 것처럼 온화한 기분이 들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창과 방패, 갑옷과 화살로 구성된 작품이다. 보라색, 파란색, 황금색 계열을 조화롭게 썼다. 방패와 갑옷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는 것은 구도를 맞추기 위함인 것 같고 활과 화살을 뒷부분에 놓아 좀 더 화려해보이게 하였다. 갑옷 안에 검이 꽂혀 있는 것은 무장한 군인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갑옷도 전투와 살상을 대변하는 검에 의해 방어될 수 없다는 걸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이란 결국 전쟁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보석 디자인으로 자본주의에 화려하게 편승한 티파니앤코가 전쟁 무기들을 단순하게 아이템이나 모티브로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문화적 가치를 누리기 위해서는 전쟁이란 반대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품의 가짓수도 많고, 직원분들도 굉장히 친절하고 평론가의 의견과 개인적인 해석도 내놓으실 정도로 고민을 하시고 일에 임하고 계시다는 걸 느꼈다. 자부심이 느껴졌고 친절하면서 절도있는 태도에 감상하는 내내 도움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