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니메쥬와 지브리: 영원히 변주될 감성 속으로

전시 리뷰

by 김바다

아니메쥬와 지브리 전시회가 시작된 6월부터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얼리버드로 예매하고 야심차게 용산 아이파크몰 6층에 있는 대원뮤지엄으로 가봤지만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대기 시간만 4시간이었고, 설령 들어간다 해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을 터였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건 못 보겠다 싶어 취소하고 시간이 꽤 흘렀다. 한참 뒤인 11월, 인터파크에서 전시회를 살펴보다가 지브리 전시회가 1+1을 한다는 것을 알고 즉시 예매했다. 남자친구에게 그 기쁜 소식을 알려 주려고 했는데, 세상에 남자친구도 똑같이 예매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통했네, 하고 말했다. 나는 취소하고 남자친구 표로 같이 갔다. 사람이 훨씬 없었고 아주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파일, 스티커, 팔찌 등의 기념품도 받고 들어갔다. 결론적으로 너무 마음에 드는 전시였다. 소개도 잘 되어 있었고, 아니메쥬 잡지와 함께 지브리의 역사에 대해 볼 수 있었으며, 직접 그린 작화와 잡지도 엄청 많이 들여와서 풍성했다. 자료를 아주 많이 조사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1980년대 어느 애니메이션 팬의 방이다. 일본답게 방은 좁은 편이지만 알차게 방을 꾸며 놓았다.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에 라디오도 있고, 음향기기도 상당히 좋다. 게임기도 있고, cd 플레이어도 있다. 이 작은 방에서 소위 덕질이라는 것을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오타쿠로 불리며 방 안에서 애니메이션만 본다고 해도 행복했을 사람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 그들이 50대가 되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부흥기 동안 수많은 애니메이션에 둘러싸여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그들의 삶이 느껴진다. 왠지 아늑하고 이 방에 들어 있는 여러 작품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물같았을지 물씬 느껴진다.

이 전시회에서는 아니메쥬 잡지 창간과 부흥,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며 직접 영화 제작에까지 뛰어들도 스튜디오 지브리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애니메이션 과도기, 점점 성장하는 느낌 그리고 결국 애니메이션의 완전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 시대, 이렇게 시대가 흘러 쇠퇴해버린 애니메이션의 세계. 나도 한때 어릴 적에 투니버스에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많이 좋아하고 즐겨 봤기 때문에 그런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힘을 잃어버린 현대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애니메이션반 틀면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고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나올 줄을 모르던 나였다. 부모님께 혼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좋아하는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고, 신문으로 티피 편성표를 찾아 보고 볼 계획을 짜고 했던 시절이 아주 그립다. 내 어린 시절이라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그 어린 시절을 함께해준 여러 애니메이션, 그리고 그걸 부흥시킨 아니메쥬와 지브리에게 나도 내 어린 시절을 빚졌다고밖에 할 수 없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어릴 적에 보면서 이 세상이 이렇게 따숩고 몽글몽글하구나 하는 희망이 자랐다. 그렇게 다정하게 세상을 어루만지던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젊은 시절이 이 전시회에 숨결로 닿아 있었다. 처음에는 펜으로 그리기 어려워서 연필로 그려도 돼, 라는 한 마디에 빛을 찾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한 시대를 구상하고 일으키고 어린 아이들에게 많은 빛을 선사해준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보았지만, 이젠 예전같은 희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같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내 좋은 상상과, 내 행복한 기억의 일부를 만들어주신 미야자키 하야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이건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대표작인 빨간머리 앤이다. 어릴 적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 세계로 빠져들었고, 그걸 충실하게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해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거장의 칭호가 아깝지 않지만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이런 감성을 알지 못할 것이고 해리포터도 한물 갔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세대 사람들인데 빨간머리 앤 정도야 완전히 고전이겠지 싶다.

고전, 내 어린 시절에도 분명히 고전은 고전이었지만 그건 지금과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빅토르 위고, 생텍쥐페리 등 문학 전집을 읽으며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문학의 세계 어른들의 세계 속으로 글을 통해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사랑했던 하이디도, 메리 포핀스도, 빨간머리 앤도 다 모두 고리타분한 옛날 옛적의 동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스마트폰의 시대는 감수성마저 빠르고 인스턴트하게 바꿔버렸고, 아날로그가 사라지면서 점차 사람들의 감정도, 두터운 정도 얇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림체가 느껴진다. 둥글둥글하면서 색감이 따뜻하다. 녹색 풀밭을 보면 어딘가 만들어진 세계를 보는 것 같은 작위성이 느껴진다. 그게 싫은 게 아니고 그런 세계를 직접 만들어내고 현실과 다른 공간을 직접 설립한 그의 손길이 참 따스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보다 더 밝고, 동화적이면서 부드러운 느낌이다. 날이 서있지 않고 공격을 하고 싸운다고 해도, 서로 돕고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유지된다.

그의 그림에는 식물이 참 다채롭게 사용되는데 현실에 있는 것을 모티브로 하였을 텐데도, 이국적이고 낯선 식물이 가득하다. 그런 느낌이야말로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관의 일부를 이룬다. 낯설고 새로운 것마저도 기분 좋고 경이롭게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토토로와 마녀배달부 키키. 이렇게 많은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힘들기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거장조차도 언젠가는 나만한 나이였겠지. 젊은 나이에 그런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성장해가고, 세계관을 이루고 장인정신을 발휘해서 작품을 완성해가던 그의 시절, 나도 왠지 그리워진다.

지브리가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몇년 전에 들었다. 제작비를 엄청나게 투자해서 마지막 힘을 다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들었지만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 사람이 성장하고 정점을 찍다가 언젠가는 쇠퇴기를 겪는데 그 과정마저도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아주 아름답고 멋진 세계를 만들어냈던 분이시기에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서 떠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작품만으로도 영원히 변주될 아름다운 감성을 충분히 이끌어주고 계시기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태어날 많은 어린이들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볼 것이고, 시대가 변해서도 그의 작품은 살아 많은 감성을 남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의 모든 토토에게 : 열여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