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리뷰
어슬 청담을 알게 된 건 인터넷을 검색해보다가였다. 퓨전 한식집에 자주 가본 적이 없어서 한식과 양식을 적절하게 섞어 만든 식당이 궁금했다. 인터넷에는 주류 주문이 필수라고 되어 있어서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로 들어가는 길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성공했다는 생각, 이런 식당도 다 와 보고 좋았다. 제대로 어른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어슬 청담으로 들어가는 길은 설레기도 하고 세련되었다. 깔끔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식당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직원분도 매너가 좋으셨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뭘 주문할까 고민을 했다. 식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는데 가운데에는 식물 조형이 있어서 편안하고 고급스러우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났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하면 웰컴술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도수가 낮은 거, 남자친구는 도수가 좀 더 높은 걸 받았다. 내가 마신 술은 글림약주 같았는데 시트러스 향에 경복궁 술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담백하고 깔끔한 피니시, 균형잡힌 단맛과 산미의 풍부한 조화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향기로웠고 알콜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아서 굉장히 깔끔했다. 좋은 술은 이렇게 향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술을 향기롭다고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저렴한 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럽고 유혹하는 듯한 향기. 술에 빠질 생각은 없지만 왜 끌리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술이 손짓하는대로 이끌리고 싶지는 않다.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고 술에만 이끌려서 그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면 점차 수렁 속에 빠지는 느낌일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의지로 나올 수 없겠지. 나는 몇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술을 즐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 정도로 좋은 술이었다.
이건 한우육회 밀전병 타코인데 두 피스에 10000원이다. 메뉴 소개를 보면 청어알젓 소스로 버무린 한우육회에 미나리, 과카몰레, 청양사워크림을 넣었다고 되어 있었다. 수분이 많은 느낌이었다. 먹을 때 손으로 소스들이 흘러 나올 정도였는데, 그런 거랑 상관이 없이 맛이 좋았다. 밀전병에서는 특별한 맛이 나지 않았든데 적당히 가벼운 느낌이었고, 한우육회에서는 촉촉한 맛이 났다. 그리고 소스 여럿이 어우러져서 조화로웠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지만 재료가 서로 잘 어울려서 부담스럽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선하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 들어서 즐거웠다.
이건 묵은지 우삼겹 라면이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나 싶을 정도로, 우삼겹도 기름기가 좋았지만 국물에서 라면의 스프 맛보다는 요리에 가까울 정도로 정갈한 맛이 났다. 묵은지가 들어서 그런가 따뜻하고 몸에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면발도 부드러웠고 이렇게 좋은 식당에서 고급스러운 라면을 먹었더니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흔한 음식인데도 이렇게 멋있게 변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기도 했고, 날이 추웠는데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서 좋기도 했다. 막 먹는 음식이 아니라 조금씩 떠서 먹으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건 명태회 들기름 파스타였다. 마늘콩으로 만든 소스에 직접 짠 고소한 들기름과 명태회를 비벼 먹는 차가운 파스타라고 했다. 차가운 파스타라서 그런지 파스타 면이 좀 더 단단하고 시원했다. 그래도 먹는 맛이 있었다. 명태회도 들기름파스타에 매콤한 맛을 더해 주어서 잘 어울렸다. 들기름은 아주 부드럽게 파스타를 굴리면서 입안에서 고소한 향을 퍼뜨렸다. 한식과 양식이 어우러져서 이렇게 새로운 요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