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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일지 1>

by 김바다

괜찮은 옷이 많은데 코디가 아쉬운 적이 많다. 나는 독특한 패션 철학이 있는데, 아주 세련되게 입지 않는 게 내 철칙이다. 그러나 이건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세련되지 않게 입으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색깔을 좋아하고 눈에 감각적으로 들어오는 걸 마음대로 조합하다 보니, 평범한 패션이 아니라 잡다하고 독특한 스타일이 되어버린다.

아무래도 내 동경의 대상이 동화 속 말괄량이나 마법을 부리는 신비로운 캐릭터라서 이렇게 된 것 같기는 하다. 아주 독특하게 입으면 신이 난다. 남들의 시선을 받든 안 받든, 내 에너지를 뿜어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에너지를 뿜어대는 걸 조금은 거둘 필요도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 패션을 탐구하고 좀 더 세련되고 깔끔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템은 차고 넘친다. 이제 이것들을 좀 더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어 보자.

최근에 데이트룩으로 입은 걸 봐보겠다. 남자친구는 이제 해탈해서 내가 어떻게 입고 오든 웃고 말지만, 나 스스로 고찰을 해볼 필요도 있다.

머리는 요즘 단정한 편에 가깝다. 적당한 길이의 생머리, 그리고 염색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검지는 않고 적당히 갈색 빛이 도는 게 내 머리스타일이다. 화장도 크게 문제는 없다. 얼굴이 붓지 않고 아이라인을 그린 뒤에 아이섀도를 두어 개만 바르면 적당하고 예쁘다. 원래는 아이섀도 7개 정도를 써서 완성했는데, 덜어낼 수록 예쁘단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패션이다. 나는 유니클로에서 산 기본 흰 티를 입었다. 그리고 밑에는 베네통에서 산 부츠컷의 밝은 하늘색 청바지를 입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입어도 내 체형이 아주 예쁘지는 않았다. M사이즈 티를 입었는데 헐렁한 핏이 예쁘게 나지 않고 몸에 적당히 달라붙었다. 팔뚝살과 배 둘레가 두꺼워서 평범한 체형인 것이다. 티만 입어도 예쁜 체형인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마른 체구인데, 나는 먹는 걸 좋아해서 요즘 체형이 아주 예쁜 편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봐도 흰 티에 청바지 조합인데도 아주 예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키티 자켓을 입었다. 이 키티 자켓은 살 때는 아주 예뻤는데 입어 보니, 코디가 쉽지 않은 옷이다. 어떤 옷에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렇게 무지 티에 청바지 위에 입어도 현란한 키티 무늬가 눈을 사로잡고 세련되지 않은 것이다. 딱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박힌 옷을 입은 느낌. 어른스럽지는 않다.

여기까지로 끝내면 최악은 면했을 수 있지만, 초록색 가디건이 굉장히 어울리지 않게 조합되었다. 하늘색과 흰 줄이 있는 가디건인데 안그래도 속이 현란한데 길게 무늬도 떨어져서 청바지랑만 그럴듯하게 어울리고 옷 못입는 사람 룩을 완성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검은 백팩? 좀 여성스러운 가방이라 뭐라 할지 모르겠는 내 가방은 세련되어 보이지만 키링이 많이 달려 있어서 아무래도 깔끔한 느낌은 없다. 그렇지만 키링을 뗄 생각은 없다.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신발은 반스 하늘색 운동화로 어느 옷에나 어울리는 것이라 다행이었다. 전체적으로 가디건에 하늘색 줄, 하늘색 바지, 하늘색 운동화로 톤온톤을 하려고 애쓰기는 했지만 조합하고 보니 내 체형에도 어울리지 않고 보기 좋지도 않은 룩이었다.


이제 이걸 하나씩 고쳐 보면, 이 하늘색 가디건에는 검은색 니트 원피스(집에 있음)이 가장 어울렸을 것 같다. 그 원피스 소매 끝 부분에는 붉은 무늬가 들어가기는 했는데 그래도 전체가 무릎까지 오는 검은 원피스라 꽤 어울릴 것이었다. 가디건과도 괜찮게 매치되었을 것 같다. 목도리도 하고 싶기는 한데, 아마 안 하는 게 예쁠 것이다. 결국 원피스에 가디건+운동화 조합이 가장 괜찮았을 것 같다. 신발은 색깔이 튀어도 괜찮은 편이니까.


목도리 가지고 있는 거 잠깐 생각하기: 분홍색/화려 에스닉 패턴/검은 체크/색 다양한 두꺼운 주황색/아주 얇은 뜨개


왜 패션을 신경 써야 하는가. 나는 남들의 시선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상관도 없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보다는 나 자신을 가꾸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방향으로 옷을 신경써서 갖춰 입는 건 좋은 것 같다.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입기 보다는 어울리게 매치해서 입는 게 더 머리쓰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내 패션은 색이 너무 다양하다. 하나씩 보면 예쁜데, 그걸 다 때려박으니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철칙을 포인트는 하나만!으로 바꿔가야겠다. 내 옷은 평범한 게 없고 다들 너무 특이해서 조합하면 안 어울린다. 기본으로 아우른 뒤에 포인트 딱 한개만 넣기, 이렇게 해야겠다. 포인트는 색깔을 의미한다. 지금 없는 기본템을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니 잘 조합해보자.



오늘 직장 갈 때는 어떻게 입어볼까. 직장에서 입은 걸 남자친구가 볼 수 없으니 직장으로 옷 조합 몇 가지를 시도해본 뒤에 예쁜 조합을 데이트 때 입는 것으로 해보자.



오늘은 이렇게 입을 것이다.


몇 가지 옷을 입지는 않고 꺼내서 색을 대 보았는데, 단순하게 단색으로 맞춘다고 예쁜 조합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옷에도 퍼스널 컬러처럼 색이 어울리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비슷한 계열의 색인데도 어떤 건 어울리고 다른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색을 맞춰보고 비교해서 입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포인트는 하나로 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색을 잘 배합하면 된다. 일단 나는 카키색 자켓을 골랐다. 여기에 이너로 입을 걸 하얀색으로 하려다가, 분홍색 계열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아예 밝은 톤의 분홍색 셔츠가 있었고, 다른 건 조금 더 탁하고 살구색과 분홍색이 섞인 블라우스가 있었다. 둘 다 카키색 자켓에 대보니까 분홍색은 좀 너무 밝은 감이 있어서 카키색을 튕기는 듯 했고, 탁한 살구 분홍 블라우스는 가을 색채에 놀랍도록 어울렸다. 일단 이렇게 상의를 결정하고 치마와 바지 중에 고민하다가 청바지보다는 치마가 나을 것 같아서 보는데 내 치마 종류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 옷이 이렇게 많았구나. 선택지가 참 넓다. 그리고 밝은 베이지 색깔 치마를 매치했는데 잘 어울렸다. 그리고 목도리는 어울리는 게 없을까 했는데 하나도 안 어울리다가 얇은 털실로 짠 목도리가 어울렸다. 하늘색과 남색이 섞인 뜨개 목도리였다. 가을 느낌이 엄청 나기 시작했다. 겉옷으로 패딩 입으려다가 체크무늬 갈색 코트로 결정했다. 조합해서 침대 위에 놓고 보니까, 가을 여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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