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꾸물거리지 마. 자꾸 마음이 쓰여. 벌써 떠나기로 결심했잖아. 어서 가.”
꽃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도 오만한 꽃이었다…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세상에게 건네는 기다란 시이며, 그의 삶의 수기이다. 생텍스는 오만하다는 단어를 아주 손쉽게 다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바꿔놓았다. 오만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행실이 바르고 겸손하지 않으며 방자하다는 뜻까지 포함한다. 실제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그런데 위 어린왕자 문맥에서 오만하다는 상당히 다른 뜻이다. 어린왕자가 떠나려 할 때, 꽃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어린왕자보고 어서 떠나라고 말했다. 조금만 더 어린왕자가 마음을 쓰고 신경을 쓰면 꽃은 눈물을 터뜨릴까봐 부끄럽고, 너무 솔직하게 보일까봐 걱정한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굴면서, 어린왕자도 그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인데 꽃은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가리고 숨기고, 네 개의 가시를 보이면서 자신은 강하고 괜찮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아주 연약한 꽃인데, 꽃은 자신이 강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건 건방지거나 거만한 것이 아니다.
꽃도 자신이 약한 걸 알고 있다. 떠나고 싶어하는 어린왕자의 마음을 알고 그 앞에서 토라지지도 않고, 가지 말도록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서둘러 떠나게 한다. 자신은 괜찮으니 가도 된다고 말한다. 사실은 괜찮지도 않고 슬퍼하고 있으면서, 눈물이 터질 것 같으면서 어린왕자보고 가라고 하는 걸 어린왕자는 오만한 꽃이라고 말하였다. 어린왕자도 오만하다는 말을 사전적 정의로 쓰지는 않았다. 꽃이 실제와 다르게 감정을 표현하는 걸 그렇게 말한 것 뿐이지만, 어린왕자는 꽃의 마음을 시간이 아주 흘러서야 깨닫게 된다.
꽃은 어린왕자에게 행동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어린왕자는 그걸 꽃의 허영으로 볼 뿐이었다. 요구하는 게 많고 말이 많으며 감정적으로 여린 꽃을 감당하는 게 힘이 들어 어린왕자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꽃은 어린왕자가 떠날 때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장 오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오만은 꽃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린왕자를 사랑하고 있는 걸 마지막까지 숨겨 어린왕자가 깨닫고 성장하는 걸 기다려주는 것이다.
꽃은 한 자리에서 아주 연약한 가시로 자신을 지킨다. 이러한 꽃은 사람의 애처로운 사랑을 비유한다. 사람 안에 깃들어 있고 언제 피어날지 모르는 사랑을. 우리 모두는 어린왕자로 태어나서 사랑의 존재를 깨달아 성숙에 이른다. 여우를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교육을 받고 뱀을 만나 지혜를 얻으면 사랑을 알게 되고 성숙해진다.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을 인지한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는 지나온 길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사랑하고, 지식을 사랑하고, 칭찬과 인정을 사랑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사랑이 아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어린아이보다도 알지 못한다. 친구를 만날 때 그저 좋아서 만나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제대로 사랑을 알고 있다. 친구의 부모님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집에 사는지를 보고 만나지 않는 시기를 우리 모두는 거쳤다. 그러나 그걸 쉽게 잊어버리고, 우리는 비행사처럼 방랑한다.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있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를 통해 사랑을 찾기를. 생텍스는 그런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언젠가 그의 글이 세상 구석구석에 닿을 때 우리 세상은 조금 더 따스해질 것이다. 하루에도 태양이 여섯 번이나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