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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Dec 13. 2024

비화가야 소녀 송현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창녕박물관 송현전(傳) 특별전



송현이는 5~6세기 창녕 지역에 살았던 16세의 비화가야 소녀이다. 비화가야(非火伽倻)는 삼국시대 가야 연맹체를 구성했던 여러 소국 중 하나이다.





비화가야를 대표하는 송현동 고분군의 15호분에서 지난 2007년 12월, 주인 외에 4구의 인골이 나왔다. 가장 안쪽에 있던 왼쪽 귀에 금제 귀걸이를 한 인골은 도굴의 피해가 적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국내 최초의 가야 사람 복원프로젝트를 통해 복원해 낸 인골의 주인공이 바로 순장 소녀 송현이로 송현동 고분군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송현동 고분 속 인골을 수습해 2008년부터 1년간 가야사람 복원연구를 했다. 이 연구에는 다양한 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가야 소녀는 컴퓨터 단층 촬영(CT)과 3차원 정밀 스캔, DNA와 안정동위원소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총동원된 학제 간 융합연구에 의한 첨단 복원기술로 다시 태어났다.





비화가야 순장 소녀 송현이를 주제로 한 '송현전(傳)'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창녕박물관을 지난 11월에 방문해 송현이와 마주 서 보았다. 153.5cm의 키에 턱뼈가 짧으면서 넓고 편평한 얼굴이다. 특히 팔이 짧고 허리는 21.5cm인 작은 체구지만, 거의 8등신의 목이 긴 미인형이다.


송현이의 신장은 출토 당시의 매장자세 길이는 135cm였으나, CT로 촬영한 뼈를 3D로 재구성해 만든 복제뼈로 해부학적으로 조립해 151.5cm가 나왔다. 거기에 특수분장 기법으로 피부와 머리카락을 심었더니 153.5cm로 측정됐다. 송현이의 나이는 법치의학적 산출 공식에 따라 16세 전후로 추정되었다.



DNA 추출 분야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법의학적 인골 수습·기록·해부학·인체복원은 가톨릭의과대학, 과학적 연연대측정은 충청문화재연구원이 담당했다.



송현이는 반복적인 운동으로 인한 무릎 연골의 손상이 발견되어 낮은 신분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뒤통수뼈에서 다공성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을 앓았다는 사실과 쌀, 보리, 콩과 같은 곡식과 견과류가 주였으며, 육식류에 의한 단백질 섭취도 이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골 앞니의 특이한 마모상태는 앞니로 무언가를 자르는 일을 반복해 역시 낮은 신분으로 추정된다.


송현이의 발견과 복원은 고대 가야인의 신체적 특징과 생활 습관을 파악해 가야 문화를 재조명하고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주인이 죽으면 노비를 함께 순장(殉葬)하는 가야의 순장제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순장제도는 삶이 사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생긴 우리 고대사회의 관습이다.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최고 지배층은 권력과 정권을 과시하고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송현이는 무덤의 주인을 따라 함께 매장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은 권력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지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홀로그램 가상공간 속에 다시 태어난 AI 송현이가 관람대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을 통해 송현이의 사망시기는 15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순장 당시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질식이나 약물투여로 사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순장 당시, 왼쪽 귀에 금동귀고리를 달고 묻혀 순장자가 최하위계층의 신분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지배층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죽었다는 것은 당시 그 죽음을 예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현전 특별전에서는 송현이의 인골 외에 교동 62호분 특수기형토기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특수기형토기가 출토된 교동 II지구 62호분은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고분이다. 남북 5m 동서 8m의 규모의 고분으로, 38호 분과 T 자상으로 직교하여 조성된 연접분이다.



62호분 특수기형토기



62호분에서는 피장자의 안치 공간이 한쪽으로 치우쳐 좁을 정도로 다량의 부장품이 부장 되었다. 특히 교동고분군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다양한 모양의 상형토기가 세트로 출토되었다.


창녕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비화가야 순장 소녀 송현이를 주제로 한 '송현전(傳)' 특별전이 2025년 6월 1일까지 열린다





비화가야는 가야연맹 중 하나로 철기문화로 유명한 곳이다.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양식과 껴묻거리(무덤에 같이 묻는 물건)를 통해 비화가야의 정치적 성장부터 소멸까지를 잘 보여주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1910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으며, 1918~1919년에 본격적으로 발굴된 11기의 고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가야고분군 중 최대 규모의 발굴이었다고 한다.





특히 무덤 양식과 껴묻거리는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이용해 신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비화가야 지배층의 국제성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무덤양식은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며, 고분에서 출토되는 껴묻거리 중 일명 창녕양식토끼라 불리는 독특한 형식의 토기들은 비화가야의 세력범위와 비화가야만의 독자적인 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세 벽만을 쌓고 한쪽 벽으로 드나든 후 밖에서 나머지 벽을 막아서 만든 무덤, 흔히 중심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석곽이나 석실이라고 부르는 방이 있다.



창녕양식토기의 특징은 굽다리(아래 받침 부분) 접시의 뚜껑에는 마치 굽다리를 축소한 듯한 형태를 거꾸로 붙인 대각도치형 뚜껑 손잡이가 부착되는데, 끝 부분 아래에 한 줄의 뚜렷한 줄무니가 있다. 뚜껑, 굽다리접시, 항아리 등 다양한 토기의 표면에 애벌레 또는 번데기와 유사한 모양의 유충문(幼蟲文)이 주로 새겨진다.




굽다리의 형태는 직선적인 사다리꼴 형태를 띠며, 3단 중 1단과 2단에만 엇갈린 사각형 구멍이 뚫어진 형태가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짙은 색을 띠는 토기가 다수이다. 뚜껑이 있는 긴 목 항아리는 굽다리를 붙이지 않고 목이 직선으로 곧게 올라가는 형태가 많으며, 항아리의 목부분과 어깨 부분에 유충문(또는 점렬문)이 주로 새겨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문헌에서 등장하는 비화가야는 지금의 창녕(昌寧)(경상남도 창녕군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가야 소국으로 추정된다. 중국 사서에는 불사국(不斯國), 삼국사기에는 비사벌(比斯伐)로 알려진다. 신라의 영토 확장에 중요한 전략적 역할을 했으며 가야 연맹이 쇠퇴하면서 비화가야 역시 562년에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창녕읍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화왕산(火旺山) 서쪽 사면에 대형 봉토분을 중심으로 중소형 고분이 위성처럼 배치되는 군집형태로 조성되어 비화가야 지배층의 신분적 위계질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약 300 여기 이상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송현이가 묻힌 고분은 고분군의 동편에 있는데 연접한 16호분을 먼저 만든 후에 봉분을 이어 붙여 만든 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서로 이어 붙어 있는 표형분(瓢形墳)이다.


구릉 아래로는 창녕읍과 너른 벌판이 보인다.



본래 사적 제80호인 창녕 교동 고분군과 사적 제81호인 창녕 송현동 고분군은 2011년 7월 28일 두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4호로 다시 지정하였다



기원 후 1~6세기 중엽에 걸쳐 영남과 호남 지역에 존재했던 고분군 7곳을 묶은 연속유산인 가야고분군은 지난 2023년 9월에 우리나라 유산으로는 16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을 비롯, 고성 송학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 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포함된다.



그동안 가야는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나아갔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562년까지 동아시아 고대 역사 속에서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며 하나의 단일체가 아닌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관계를 형성했다.



가야의 나라들은 화려한 유물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는 독자성과 다원성을 유지하며 이어나간 찬란한 가야문명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새겨 볼 수 있게 했다.






송현전 특별전 전시회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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