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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빌리티 Dec 21. 2023

말만 느린 줄 알았는데 유치원에서 문제아가 되어버렸다.

글쓰는 미국 언어재활사 엄마


또래보다 말이 느린 것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부모들도 느린 말로 인해 문제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걱정이 시작된다. 


유치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아이라니. 

말만 조금 느린 줄 알았는데 말이다. 


같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줄을 서야 하는데 혼자만 뛰어다니고, 그림 그리는 시간에 색연필을 바닥에 던진다 등의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된다면, 느린 말이 문제인가 싶어 하루라도 빨리 말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때리고, 던지고 고집이 센 우리 아이가 계속 이러면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소통이 돼야 훈육이라도 할 텐데 말이다. 


답답한 우리는 그저 ‘울지 말고 말로 해.’ ‘말로 해야 엄마가 알아듣지!’ ‘뺏지 말고 말로 하라고 했지!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너랑 안 놀아’’라는 말로 아이와 싸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모는 아이가 왜 짜증 내면서 소리를 지르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고, 아이는 아이대로 몸으로 표현하는 요구를 해소하지 못한 채 울고만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만약, 행동 문제로 인해 기관에서 퇴소당한 경험이 있거나, 단체 생활에 적응 문제가 지속해서 나타나고, 주 양육자 외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관찰되면, 사회성 발달 지연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부모와 하는 상호작용은 아마 학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며, 질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지 잘 관찰하여야 한다. 특히,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은 언어 발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2세 이전 아이의 경우, 이름을 불렀을 때 고개를 완전히 돌리고 부모의 눈을 정확히 쳐다보는지 관찰해 보자.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은 아이가 상호작용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다. 눈 맞춤과 호명 반응이 약하다면 아직 상대와 소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뜻이고, 이대로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만큼 소통의 기회 또한 줄어들어 자라면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게 된다. 


기관 혹은 단체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제 행동을 보인다면 집안 환경을 되돌아보고 밥 먹기, 손 닦기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생활 습관부터 잡아주고 순서 지키기, 기다리기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  집 밖에서 생활할 때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이러한 사회적 규칙을 지키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규칙은 함께 어울리며 관계 속에서 배우게 되는데 또래 관계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면 이러한 규칙을 배울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아이가 요구하지 않아도 미리 다 해주거나 최대한 울리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다 아이에게 맞춰주며 생활하면 할수록 바깥 생활을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혼자 먹을 수 있게 유도하고 흘린 음식은 스스로 치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아이는 부모가 기다려주는 만큼 배울 것이다. 부모 눈에는 아직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한 아기로 보일 수 있으나,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영리하다. 


아이들은 부모, 친구, 동생, 선생님 등의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이를 우리는 사회성이라 부른다. 사회성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데, 말이 느리면 이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36개월이 넘으면 사회적 역할이 넓어지고 사회적 기술도 복잡해지게 되는데, 이때 적응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6개월 이전의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를 관찰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장난감으로 혼자 놀거나 단순하게 놀이에 참여한다. 하지만 36개월부터는 친구와 함께 놀며 서로 짧은 대화도 하고 장난감도 주고받으며 본격적으로 같이 놀기 시작한다. 서로 간의 마찰 없는 놀이를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조금씩 쌓아온 사회성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말이 느린 아이들은 이때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가정 외 아이가 처음 소속되는 공동체는 학교다. 학교에서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술이란 차례 지키기, 문제 해결, 책임감, 배려, 도움, 협동 등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규칙 및 사회의 특성은 놀이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게 되는데, 말 느린 아이는 이러한 놀이 경험이 적을 가능성이 높다. 


말이 느려 하고 싶은 말이 안 나와 답답해서 손부터 나가게 되고, 자신의 규칙대로 친구가 따라주지 않으니 소리를 지르게 되고,  친구들과 말도 잘 통하지 않다 보니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주변만 맴돌다 혼자 노는 경우도 많다. 또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상처받은 경험들과 함께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고 작은 실패와 어려움 앞에서 다시 일어날 힘이 약해지게 된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는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소속감을 느낄 때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아상이 심어지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같은 반에 있는 모든 아이와 잘 지내는 인사이더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주 소수의 친구라도 그들과 소통하며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며 어울려 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익숙한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매번 결과가 예측되는 소통을 하는 경우, 학습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2세 이상의 아이 중, 집에서는 어느 정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집 밖에서는 잘되지 않는 아이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예를 들어, 병원 놀이를 할 때 아이가 항상 의사 역할을 하며 아픈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주며 놀이가 끝나는 레퍼토리나, 샤워할 때 매번 엄마가 문어, 아이는 문어를 잡아먹는 상어 역할을 하는 경우다. 언뜻 보면 상호작용이 되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행동에 정해진 순서가 있지는 않은지, 혹은 역할 놀이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여야 한다.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매번 들었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행위가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땐 상호작용이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학습된 상호작용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가 쓰는 어휘 및 문장이 간단하고 제한적이며 (예: 주세요, 일어나),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하고,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발달은 다양한 환경, 사람, 및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향상된다. 따라서 매번 같은 레퍼토리 속에서는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없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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