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로고를 입을 것인가, 철학을 입을 것인가

명품과 사치품의 경계

by 김삼월

현대의 거리는 거대한 기호의 전시장이다.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의 어깨 위로, 가슴팍으로, 그리고 신발의 뒤축으로 각기 다른 자본의 언어들이 번쩍인다. 서로 얽혀있는 알파벳, 노골적으로 새겨진 거대한 심볼, 특정한 패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발화(發話)다. 그들은 입을 열지 않고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소비할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기꺼이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 자본주의의 충실하고도 자발적인 '인간 광고판'이 되기를 자처한다. 우리는 지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로고를 입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물건을 통해 진정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고 있을까?


매끄럽게 포장된 자본의 환상 속에서, 로고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해 가는 개인의 철학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이 명품과 사치품. 두 개념의 경계를 날카롭게 그어내야만 한다.



시간을 견디는 명품(名品), 허영에 기생하는 사치품(奢侈品)



본래 명품, 즉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는 단어는 이름이 날 만한 훌륭한 물건을 뜻한다. 그것은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장인의 땀방울, 타협하지 않는 소재에 대한 집착, 그리고 브랜드를 창립한 자의 고유한 미학적 철학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진정한 명품은 시간을 견뎌낸다. 유행이라는 얄팍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이 흐르고 손때가 묻을수록 사용자의 삶과 결합하여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낸다. 여기에는 '어떻게 물건을 만들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아름다움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존재론적 고민이 담겨 있다.


반면 사치품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사치(奢侈)란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낭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현대의 사치품은 물건의 본질적 가치나 미학적 완성도보다는, 오로지 '희소성'과 '높은 가격표', 그리고 그것을 과시할 수 있는 '거대한 로고'에 그 생명력을 의존한다. 공장에서 수만 개씩 찍어내는 캔버스 천 쪼가리에 불과할지라도, 거기에 특정 브랜드의 로고가 프린트되는 순간 그것은 수백만 원의 기호로 둔갑한다. 질 낮은 코튼 티셔츠에 큼지막하게 박힌 브랜드 네임, 철학적 빈곤을 감추기 위해 더욱 화려하게 치장된 조악한 장식들은 명품의 가면을 쓴 사치품의 전형이다. 이것들은 철저히 대중의 허영을 자양분 삼아 기생한다.



기호 가치와 몰개성의 아이러니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의 소비가 '사용 가치'나 '교환 가치'가 아닌 '기호 가치'를 소비하는 행위라고 통찰했다. 우리는 더 이상 추위를 막기 위해 코트를 사거나, 물건을 담기 위해 가방을 사지 않는다. 우리는 코트와 가방이라는 물건을 매개로, 그것이 표상하는 사회적 지위와 타인의 선망이라는 기호를 산다. 로고는 이 기호 가치를 가장 직관적이고 폭력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거대한 로고가 박힌 옷을 입는 행위는, 나의 내면적 깊이나 취향의 고유함으로는 나를 증명할 자신이 없으니 자본의 힘을 빌려 나를 포장하겠다는 암묵적인 자백과도 같다.


이것은 몹시 슬프고도 기만적인 현상이다. 로고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하려 발버둥 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는 완벽하게 몰개성한 대중의 일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명동이나 강남의 거리를 걸어보라. 모두가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 똑같은 브랜드의 스니커즈를 신고, 똑같은 백을 든다. 이 기괴한 동질성 속에서 개인의 고유한 취향은 증발해 버린다.



침묵하는 우아함, 로고가 지워진 자리에 깃드는 철학



그렇다면 로고를 벗어던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바로 '철학'이다. 철학을 입는다는 것은 물건의 외피에 새겨진 기호가 아니라, 그 물건을 직조해 낸 본질적인 태도와 내 삶의 방식을 조율하는 행위다. 진정한 취향은 로고의 크기가 아니라 안목의 깊이에서 나온다. 보이지 않는 안감의 바느질 상태를 살피고, 옷감이 피부에 닿을 때의 촉감을 음미하며, 실루엣이 나의 체형과 걸음걸이에 어떻게 조화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철학을 소비하는 자의 태도다.



소비를 통한 실존적 결단



사치품의 로고 뒤에 숨어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는 행위는 전혀 멋지지 않다. 반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미학적 기준에 부합하는 물건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그것을 오랜 시간 아끼며 사용하는 것은 멋지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겠다는 윤리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부재한 채 오직 기호만을 찍어내는 브랜드의 폭리에 지갑을 여는 것은, 품질을 경시하고 마케팅의 환상만을 좇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승인하는 일이다. 반대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좋은 소재를 고집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패턴을 연구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선택하는 것은 장인정신과 창조적 노동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이다. 따라서 철학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미학적 차원을 넘어,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존적 결단이다.



당신의 고유한 밀도는 무엇인가



현대의 마케팅은 끊임없이 우리의 불안을 자극한다. 이것을 가지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고, 이 로고를 걸치지 않으면 당신의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이 달콤하고도 악랄한 속삭임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갑을 열고 자아를 내어준다. 그러나 로고로 뒤덮인 껍데기가 화려할수록 그 안의 알맹이는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아무런 지적, 미학적 토대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천만 원어치의 명품 로고로 도배한 사람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경외감이 아니라 빈망함일 것이다.


로고는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제하려는 얄팍한 방패다. 그러나 철학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단단한 창이다. 방패 뒤에 숨은 자는 영원히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자신만의 창을 가진 자는 어떠한 유행의 폭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10년 뒤면 촌스러워져 옷장 구석에 처박힐 휘발성 강한 기호를 입을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결적과 함께 유려하게 낡아갈 영속적인 철학을 입을 것인지.


명품과 사치품의 경계는 가격표나 브랜드의 역사에 있지 않다.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있다. 당신의 옷장 문을 열어보라. 그곳에는 당신을 증명해 주는 거대한 로고들이 숨 막히게 도열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침묵하는 우아함을 대변해 줄 조용한 철학들이 정갈하게 걸려 있는가. 로고는 결국 벗겨지거나 지워진다. 그러나 피부처럼 스며든 취향과 철학은 당신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당신을 가장 아름답게 감싸는 단 한 벌의 맞춤복으로 남을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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