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자아와 사물의 철학
정기적으로, 대략 6개월에 한 번씩 옷장과 신발장을 정리한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실용적 목적도 있지만, 실상은 내 삶의 궤적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들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물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마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쓰지 않게 된 물건들과 조우하게 된다. 특히 유행이 지났거나, 내 몸의 변화로 맞지 않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가지 않는 옷과 신발들이 그 대상이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물들은 이제는 단순한 잉여물이 되어버렸다. 그 선택들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처음에 이 물건들은 단순한 소비재로 내 공간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반려물건’을 ‘입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선택은 느렸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그렇게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사용하지 않은 채 먼지만 쌓여가는 사물들이 존재한다. 철저했던 나의 안목과 기대가 무색하게도, 그들은 옷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화석이 되어가며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사물의 뒷면에서 발견하는 변화의 증거
이러한 물건들을 정리할 때면 묘한 상실감과 함께 깊은 철학적 단상에 빠지게 된다. 옷장 앞에 서 있으면, ‘제행무상’이라는 말이 굳이 설명될 필요가 없어진다.
어제까지 나였던 취향들이, 오늘의 나에게는 낯설어진다.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먼저 변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그 환경 속에서 호흡하는 ‘나’라는 존재 역시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내일도 마찬가지.
물건을 비워내는 행위는 단순히 공간을 확보하는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아, 나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육체적으로 체감하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수용의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잘 사고(Buy)', '잘 버린다(Bye)'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버스에 승차하고 하차하는 일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
'나'라는 존재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버스라면, 물건들은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는 승객들이다. 어떤 물건은 운명처럼 내 버스에 올라타 오랜 시간 함께 창밖의 풍경을 공유한다. 그렇지만 영원히 함께하는 승객은 없다.
쓸모와 간직함 사이
물건을 사고 버리는 기준은 획일적일 수 없다. 오직 ‘유용성’만이 사물의 가치를 결정짓는 유일한 척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입을 수 없는 옷이나 기능을 상실한 물건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필요는 없지만, 존재 자체로 위안을 주는 물건들이 있다. 그것들은 이미 도구를 넘어선 존재다. 이러한 물건들에게는 버스의 한 좌석을 영구적으로 내어주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물건의 개수가 아니라, 그 물건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생산하고 있느냐는 점이니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취향이 확고하고 불변한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특정 스타일이나 브랜드의 틀 안에 가두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는, 고정된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취향’만이 실재할 뿐이다.
우리는 촌스럽다고 여겼던 것에서 새로운 미학을 발견하기도 하고, 한때 열광했던 스타일에서 지독한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결국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행위는 변화한 나의 취향을 긍정하고, 과거의 낡은 자아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주체적인 정화 의식과 같다.
순환의 완성: 들숨과 날숨으로 이어지는 생의 명료함
결국 물건을 잘 사고 잘 버리는 일은 우리 삶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것이다. 고인 물은 썩고 닫힌 방엔 쿰쿰한 곰팡이가 피듯, 소유의 순환이 멈춘 삶은 무거워지고 탁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물건을 심사숙고하여 입양하는 ‘Buy’의 과정이 삶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들숨이라면, 소임을 다한 물건을 감사히 떠나보내는 ‘Bye’의 과정은 내면의 찌꺼기를 비워내는 날숨이다.”
이 들숨과 날숨이 건강하게 교차할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은 명료해진다. 물건이 잘 순환되어야 공간이 숨을 쉬고, 공간이 숨을 쉬어야 그 안에 머무는 인간의 영혼도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잘 사고, 잘 버리는 것은 곧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생존 방식이다.
결국 이 들숨과 날숨의 반복 끝에 남는 것은, 잡다한 소유물로 가려져 있던 진짜 ‘나’이다. 무언가를 비워낸 자리에 억지로 새로운 것을 채워 넣으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잘 비워낸 자리의 여백. 그것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취향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명쾌하게 남겼는가’
우리에게 명쾌하게 남겨진 것들로 인해, 비로소 우리의 자아는 순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