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rene Jun 17. 2024

[공감과 배려] 아름다운 뒷모습, 그리운 얼굴들 – I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  세고비아를 그리며  © Kyrene







세고비아의 수도교(Acueducto de Segovia)와 세고비아의 알카사르(Alcázar de Segovia) 등 중세건물과 거리를 둘러본 후 프랑스로 향한다.


▲  건축기술이 돋보이는 세고비아의 수도교   © Kyrene


내비의 안내에 따라 길을 돌아 나오는데 갑자기 도로가 절반 너비로 줄어든다. 도로의 왼쪽 반은 음식점 건물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오른쪽 반이 통행하는 도로인데,  차 한 대도 빠져나가기 힘든 좁디좁은 중세 골목길이다. 


▲  도심의 비좁은 중세 골목길  © Kyrene


남편은 1종 대형 면허 실력을 발휘해서 겨우 골목길의 중간쯤을 지나니,  사이드미러가 도로양면 벽에 끼일 정도로 좁은 골목이라 잠시 멈추어서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이다. 나는 옆에  앉아서 진땀을 빼며 걱정이 태산이다.


저만치 앞에 약간 넓은 도로가 보이고 행인들이 지나간다. 서너 명의 남성들이 우리 차를 처다보며 지나가더니 다시 발길을 돌려 골목입구로 들어온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연두색 안전조끼를 착용하고 있어서 경찰이 우리를 향해 오는 줄 알았다. 나는 우리가 교통법규를 어긴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을 한다.


▲  수신호로 우리 차를 안내하는 고마운 사람들  © Kyrene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수신호’를 시작한다. ‘좌측 사이드미러가 벽에 닿으니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어라.’ ‘Ok, 그대로 조금만 앞으로, 계속 그대로 앞으로.’ 그들은 골목 입구에 서서 우리 차를 좌우로 살피면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도록 계속 수신호를 해 주는 것이다. 말 한마디 없는데 그들의 정교한 수신호 덕택에 골목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남편은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는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골목을 완전히 벗어나 우회전할 때까지 그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  잘 가라고 인사하고 있는 선한 사람  © Kyrene


세고비아 거리는 좁은 골목이 많다. 아찔한 골목을 벗어나니 옛 성벽들이 이어지고 수많은 유적지 표지판이 걸려 있어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또 골목길, 일방통행로가 나타난다. 낯선 길이니 내비의 안내를 따를 수밖에 없어 제한속도를 지키며 기어가다시피 어느 길로 들어서는데 차는 한 대도 없고 길 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차 번호판을 처다 보고 또 우리를 바라보며 지나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어느 한 사람 손가락질 하거나 야유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번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비는 계속 직진 안내를 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또다시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이다.


우리는 계단 아래 길을 가는 중이고 계단 위쪽은 작은 광장과 옛 건물이 서 있고 그 아랫길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런데 광장 쪽의 계단을 오르던 한 여성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한다. 그 길로 가면 안 된다는 뜻 같은데, 내가 두 손을 들어 ‘X’를 해 보이자 그 여성이 급히 계단을 내려와 우리 차로 다가온다. 


차창을 내리니 묻는다. “Do you speak English?” “Yes.” 차량번호판은 프랑스인데 운전자는 동양인이니 영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보행자 전용도로다. 경찰이 보면 티켓을 받고 벌금이 많다. 빨리 돌아서 나가라”라고 급하게 일러준다. 내비를 보여주며 얘가 이리로 안내를 한다고 하자, 내비는 가끔 그런다고 웃는다. “빨리 차를 돌려 저기 성당 오른쪽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걱정을 하며 손짓을 한다. 감사인사와 함께 서둘러 되돌아 나온다. “오늘 아침 우리 내비 왜 이러니?” 나는 한숨이 나온다. 오늘 내비가 이상하긴 하다. 골목길에 가두고, 보행자 전용도로에 밀어 넣고 멋대로이니 한대 패고 싶다.


▲  또 한 번 도움을 베푼 고마운 숙녀  © Kyrene


노랗게 물든 세고비아 단풍길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얘기 한다. “우리라면 바쁜 아침시간에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자상한 도움을 선뜻 베풀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훌륭한 사람들의 도움을 또 받네.” 보행자 전용도로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을 향해 비난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길을 내어주던 보행자들도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저 차가 미쳤나? 보행자 전용도로를 겁 없이 들어오다니, 저런 차는 신고해서 혼을 내야 해!’ 큰소리로 삿대질한다 해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방인의 차량 한 대를 위해 바쁜 아침시간에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나누어 도움을 준 안전조끼 차림의 남성들, 곱게 차려입은 한 여성 모두 모두 깊은 감사를 담아 축복을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치관과 삶] 창밖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