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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Sep 09. 2024

추억 속의 그 남자

<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가치관과 삶

▲  젊은 날, 그리고 지금  © Greta Hoffman






우리의 대학 교정에는 낭만이 있었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기타 치고 노래하고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은 한없이 평화롭고 예뻤다.

어느 날 갑자기 계엄령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열려 있던 대문이 닫히고 텅 빈 교정은 유령의 집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대학교정의 아름다운 추억은 아픈 기억을 덮고도 남는다.


그 당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예비고사’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지금처럼 수능성적에 따라 희망하는 대학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고사에 불합격하면 대학응시원서 자체를 접수할 수가 없었다. ◯◯ 대학 ◯◯ 학과를 미리 선택해서 원서를 접수하고, 필기시험을 치른 후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절이다.


참, ‘체력장’을 거치는 것도 필수과정이다. 국민학교 이후 단정한 교복을 입고 여중·고를 졸업한 내게, 눈앞에 펼쳐진 대학교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줄 서서 기다리던 스쿨버스는 동기·선후배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준다. 미리 정해진 전공과목 외에 ‘교양과목’이라는 공통과목이 있어서 그곳 역시 신기한 만남이 이어지곤 했다. 


눈에 들어온 새내기들을 영입하려는 선배 동아리(서클) 관계자들이 쉬는 시간마다 몰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붙임성 좋은 남자 입학동기 중에는 그들만의 새 동아리를 만들자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 Freshman 시절을 보내며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남자선배의 공통된 호칭은 형!, 군필자 늙은(!) 선배는 예비역 형! 나는 그때 그 ‘형’이라는 호칭이 무척 맘에 들었다. 같은 학우라는 동질감도 느껴지고, 남녀관계의 껄끄러움 없이 다정하고 든든했다.


남녀선배, 동기들과 생산적이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즐거웠다. 그런데 그즈음 특별한 관심으로 다가오는 남학생은, 지금까지 잘 지내온 관계마저 거부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남자친구 만들 생각이 전혀 없고 결혼 자체가 싫은 사람이니 그렇게 알아달라, 공표를 하고 다녔다.


겨우 대학 1학년에 뭐 그리 원대한 꿈을 품은 것은 아니고, 나름 방어전선이었던 모양이다. 남자 동기 중 몇 명은 우리 집을 자주 방문할 만큼 친해져서, 약속 없이 놀러 와도 엄마는 그때 흔쾌히 받아 주셨다. 나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 외출을 하면서, ‘잘 놀다 가라’는 인사가 자연스러웠고 친구들은 나보다 엄마와 무척 친하게 지냈다.  차를 마시며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며 나 없는 시간에도 잘 놀다 가곤 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 없이 좋은 선후배·동기들과 대학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 단체에서, 대단히 조용하고 정적인 전형적인 연구자 타입의 한 남자를 만났다.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가 대학 동문임을 알게 되었고,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 가족 중에는 술·담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 부분은 상당한 호감을 갖게 했다. 장교 출신으로 가치관과 행동이 반듯하다는 느낌도 갖게 했다. 그 나이의 성인남자로서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오빠는 과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과거에 과학경시대회 우승자였다. 혼자서 늘 뭔가를 조립하고 연결하고 뚝딱거리면서 라디오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덕분에 나도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훗날 HAM 자격증을 갖게 된 것도 온전히 오빠 덕택이다.


주로 혼자 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HAM, 승마, 스키 등을 습득하며 여가시간을 활용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도전적이고 독특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내 성향도 한몫 한 셈이다. 어느 날 별 말이 없던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말을 건네왔다. 과정 중에 알게 된 나의 취미생활에 동참의사를 밝힌다. 어느새 HAM 자격증도 갖추고 승마교습과 스키 강습도 마쳤다고 한다. 뜻밖의 도전(!)이었고,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실 한 구석에 장식품으로 서 있는 두 쌍의 스키를 보면서,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가는 젊은 시절의 장면들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인생사에 ‘절대’는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으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던 나는 백발이 된 머리를 만져주며 은퇴 후 남편과 24시간 함께하고 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 용감하게 도전해 왔던 추억 속의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  우리의 그때 이야기  © EmirMemedov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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