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HIE, <SOPHIE>를 듣고
필자에게 Mac Miller와 소피(SOPHIE)의 죽음은 유독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Mac의 경우 그의 작품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과 약물 중독이라는 비참한 이유 때문이었고, 소피의 경우 지난 10년의 팝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최정상의 재능을 가진 자가 단 하나의 정규 앨범을 끝으로 보여줄 수 있던 모든 역량들을 보여주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였다.
올해 초, 소피의 사후 앨범 발매 소식이 들려왔을 때 느꼈던 기분은 정말이지 오묘했다. <Circles>라는 성공적인 선례에서 우러러 나왔던 일말의 기대감, 동시에 대부분의 사후 앨범들과 같이 아티스트의 비전과 방향성은 고려하지 않은 비참한 퀄리티의 작품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필자는 Kim Petras와 BC Kingdom 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첫 선공개 싱글 “Reason Why”를 감상하며 이 복잡한 감정들을 주저리주저리 혼잣말로 뱉어내곤 하였다.
이후 2번째, 3번째 선공개 싱글이 발매되었을 때 필자는 기대가 아닌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영혼 없이 무언가 가득 채워 넣어보려고만 한, 댄스 팝의 탈을 쓴 두 껍데기들은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탄식을 자아내었다. 결국 그녀의 이름을 당당하게도 내건 문제작 <SOPHIE>는 그녀의 이름, 또 그녀의 마지막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씌우고야 말았다.
우선 본작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의 명확한 장르나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채 난잡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트로 트랙 "Intro (The Full Horror)"의 거창하지만 또 그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는 6분간의 앰비언트(Ambient)나 앨범 곳곳에 지뢰처럼 자리 잡고 있는 인더스트리얼(Industiral) 사운드들이 바로 그 예시이다. 과연 이는 소피가 생전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성이었나? 전혀 아니다. 반면 <SOPHIE>는 아티스트가 원했던 것들은 고러조차 하지 않고 여러 장르들이 불규칙하고 난잡하게 얽히고설켜져 말 그대로 마이웨이를 걷는다.
또한 지나치게 긴 트랙들의 러닝타임 역시 지루함을 유발하는 주 요소이다. <SOPHIE>의 트랙들은 대부분 4~5분에 달하는 (혹은 이를 넘어가는) 지나치게 방대한 길이를 자랑하는데, 그 순간들 속에서도 특별한 변화 없이 유사한 사운드들을 계속해서 루프 시키며 집중력을 저해시키기만 한다. 특히 "The Dome's Protection"은 7분간 알 수 없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스포큰 워드를 통해 앨범의 초장부터 힘을 쫙 빼놓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앨범이 중후반부에 다다르고 나면 평범한 싸구려 클럽튠 트랙들만이 흘러나오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는 수많은 소피의 팬들과 또 소피의 얼굴에 제대로 먹칠을 하는 순간과도 같다.
<SOPHIE>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피가 바라왔을만한 준수한 트랙들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된 신나는 광란의 테크노 트랙 “Reason Why”, 그나마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Live My Truth", 그리고 어느 정도의 캐치함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My Forever"까지. 그러나 이러한 트랙들 역시 볼품없고 불투명한 <SOPHIE>의 끔찍하고 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키고 말아, 앨범이 마지막 트랙에 다다르고 나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결론적으로, <SOPHIE>는 소피가 생전 가졌던 방향성과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졸작으로 남게 되었다. 본작에서 우리는 "It's Okay to Cry"만큼의 감동도, "Is It Cold in the Water?"만큼의 압도적인 체험도, "Immaterial"만큼의 짜릿함도 경험해 볼 수 없다. <SOPHIE>는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작품이며, 그녀의 음악을 어색하게 이어붙이고 재창조해낸 것처럼만 느껴진다. 제발, 더 이상은 <SOPHIE>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후 앨범이 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 소피는 이로써 우리의 곁을 완전히 떠났다. 아쉽지만 우리는 그녀의 새로운 음악을 더 이상 (혹은 한동안) 접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그녀가 보여주려 했던 다양한 음악과 시도들을 온전히 체험해 보지 못한 채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남긴 유산들과 감동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길이길이 회자되고 기억될 것이다. 부디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