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화작가다. 동화작가라고 스스로 부르려면 적어도 책 3권은 낸 다음 당당히 말하자라고 다짐했지만, 책 3권 내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단편동화집의 단편동화 한 편을 쓰고, 이제 계약단계에 있는 첫 장편동화 한 권이 있고, 얼마전 수상한 단편소설 한편이 실린 책이 6월 출간예정인 것으로 일단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로 불리고 싶은 이유는, 작가라는 호칭이 그럴듯해서이기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꽤 이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다소 세속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이야기로 다른 이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작가라는 생각에 글을 쓰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물론 부담도 배가 되지만.)
어쨌든 요즘은 꾸준히 도서관에 다니며 글감을 찾아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글이 여러편이다. 뭐 글맛을 키우는 연습을 했다고 치자면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연습은 싫고 누가 읽어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탓에 자꾸만 더 특별한 글을 쓰고 싶어진다.
위기철 선생님은 지금 쓰는 글은 너절한 습작에 불과하니 계속 버리고 계속 다시 쓰라고 했지만, 빨리 결과물과 조우하고 싶은 나는 괜한 조바심이 앞선다. 그래서 일주일에 여섯번은 글을 쓰기 보다는 그냥 글을 읽다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이 마음...게다가 책을 읽다보면 얼마나 멋진 글이 많은지...
그럴때면 다시 한 번 위기철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남의 작품은 절대로 나의 작품의 모범이 될 수 없다.” 나도 저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상 수상’,‘이달의 책 선정’ 등의 수식어를 볼 때면 자꾸 잘 팔리는 이야기 시장에 얼씬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생각해 보는 단계를 가장 중요시한다. 집짓기에에 비교하자면 어느 땅, 어느 지역에 집을 지을까를 고민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장악하게 된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이냐, 지반이 무른 곳이냐 등에 따라 건축자재니 전개도니 하는 것들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게다가 온전히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기도하다. 글을 쓰다보면 느끼지만, 이 녀석들이 가진 생명력을 통제하면 할 수록 한, 두줄 밖에 안 써지는 재미없는 글이 되고, 가고 싶은 데로 두면 몇시간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한 글이 나온다. 그러니까 글자가 손끝에서 나오는 순간, 실은 전지전능한 작가라는 건 사라지는 것이다.
관련해서 나는 최근에 ‘건강한 시골 밥상’같은 동화를 쓰고 싶다고 생각 했다. 자극적이기보다는 구수하고 따뜻한, 읽으면서 긴장이 풀리는 이야기 말이다. 동화 시장에서 이런 건강한 시골 밥상을 만나기란 쉽지않다. 일단 내포독자가 건강한 시골 밥상이 취향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장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여기서 큰 고민에 빠지는데, 쓰고 싶은 글을 써야하는가,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하는가하는 문제다. 갈림길에 섰을 때, 내가 쓰고 싶고 독자도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긴다. 그러면 이제 몇날 며칠은 그 소재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작가의 욕구과 독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를 찾는 것은 그야말로 너른 산에서 백년 묵은 산삼을 캐는 ‘심봤다!!’다. 로또 맞는 일은 마냥 노력으로 되지 않듯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쓰고 싶은 글을 쓰거나,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 중에 고르는 것.
쓰고 싶은 글을 쓰면? 재밌다. 하지만 작가만 신난다. 시장성이 없다. 고로 누가 읽어줄 확률이 낮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면? 시장성이 높다. 하지만 그래서 출간의 문은 좁다. 어쩌면 작가의 글쓰기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아..... 생각을 정리하려고 쓴 글에 오늘도 답은 못얻었다. 결론은, 어서 글감을 찾아 몰입해서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가 그립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