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하테루마 섬
오늘은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리토항에 갔다. 하루에 딱 2번밖에 없는 일본 최남단 유인도인 하테루마 섬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사실 어제 원래는 타케토미 섬, 이리오모테 섬을 가는 섬투어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만석이 되어버려서 예약을 못하고 내일 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뭐 하지 싶다가 하테루마 섬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직원에게 섬투어가 그렇게나 인기가 많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아니고 요즘 일할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런 투어를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시가키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투어 일을 못하게 되면서 일을 찾으러 도쿄 같은 대도시로 갔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졌음에도 다시 섬으로 돌아오질 않는단다. 뭔가 여기도 지방의 구인난이라는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리토 터미널 매점에서 도시락을 팔고 있어 후다닥 아침을 먹고, 8시 배에 올랐다. 이시가키에서도 제법 가야 하는 거리라, 배 안에서 잠이 들고 일어나 보니 9시 반 정도가 되어있었다. 와보니 이시가키도 시골인데, 여긴 진짜 시골이구나 싶었다. 여기에서 사는 사람은 당최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섬이 아주 크진 않아서, 작정하고 걸으면 웬만한 곳은 다 가볼 수도 있다만, 다들 자전거, 전동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를 빌려서 투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스쿠터를 이시가키에서 빌리고 또 오토바이를 빌리는 게 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1000엔을 주고 자전거를 빌렸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기도 썩 애매한 것이, 오르막길이 많아서 끌고 올라갈 때도 많았다. 그래도 걷는 것보단 편하니까… 생각하며 마을 쪽으로 자전거를 탔다.
길을 가다 보니, 밭들도 보이고 염소, 소들이 보인다. 정말 시골이다. 사실 하테루마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이런 평화로운 시골 풍경보다도 ‘니시하마’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키나와도, 이시가키도 바다의 풍경은 어느 곳 못지않다만, 여기 니시하마는 일본에서도 가장 예쁜 해변을 꼽으라면 항상 언급되는 곳이다.
가보니 여기도 역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2명 정도였나. 그중에 한 아저씨가 바다에 들어가서 스노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나를 만나서 인사를 건네주신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더더욱 반가워해주셨다.
나도 스노클을 해야겠다 싶어, 해변 근처에서 2000엔을 주고 스노클 장비와 오리발을 빌렸다. 바다가 깊지 않아서 아무리 멀리까지 물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물놀이하기에 아주 최적의 깊이였다. 스노클을 끼고 해변에서부터 들어가는데, 해변에서부터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제법 헤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물도 깨끗하여 멀리 들어가지 않아도 물고기가 살기 적격이었나 보다. 작은 녀석들은 내 손가락만 한데, 큰 녀석은 정말 내 팔뚝만 하기도 했다. 스노클을 많이 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렇게 물고기가 많은 곳은 처음이라 조금 신기하기도 하였다. 오늘도 흐린지라 사진을 찍어도, 구글에서 검색되는 니시하마 사진처럼은 절대 안 나온다는 것만 다소 아쉬웠다.
한 시간 정도를 스노클 하니 정오에 가까워져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열 명 정도가 해변에 있었다. 이 정도 해변에 10명이면 여전히 적긴 하였다. 고생해서 온만큼 예쁜 해변을 독과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물놀이도 했겠다, 배가 고파져서 민가들이 모여있는 취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아야화미’ (분명 일본어는 아닌 것 같다)라는 동네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옛날 시골 학교 교실 같은 곳이었다. 곳곳에 오키나와의 장식품, 책들이 인테리어 되어있어 정감 가면서 촌스럽지 않은 느낌이 났다.
오키나와 전통 음식인 ‘라후테’ 정식을 시켰다. 라후테와 제철 야채, 돈지루 (돼지고기 된장국)이 나왔다. 이 라후테는 중국의 동파육이 오키나와로 건너오면서 변형된 것인데, 동파육보다는 조금 간이 덜 짭짤하다. 오히려 양념은 한국의 장조림과 비슷한데, 식감은 동파육과 같이 부드럽다.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만 돼지고기 요리만큼은 오키나와가 단연 최고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밥도 만족스럽게 먹었으니 디저트를 먹어야 하여 취락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카페를 찾았다. ‘아토후소코’ (이것도 일본어는 아닌 듯하다)라고, 집을 개량한 듯한 카페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당최 커피나 여유롭게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오키나와산 흑설탕 빙수를 팔고 있었다. 흑설탕도 빙수도 좋아하는 나인지라,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빙수를 시켰다. 한 입 먹었더니, 아삭아삭 씹히는 얼음과 흑설탕의 조화로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간 얼음과 설탕뿐인데 이렇게 맛있다니, 연신 감탄하면서 먹었다. 카페 야외테이블에서 빙수를 먹으면서 하테루마의 시골길을 천천히 감상하였다.
카페에서 쉬고 취락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는데,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대개 평지라 돌아다닐만하였다. 이런 작은 섬에도 초등학교도 있고, 어린이집도 있었다. 특히 어린이집은 오키나와 전통 빨간 지붕으로 되어있어서 특색 있게 느껴졌다.
‘일본최남단광장’이라는 곳이 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가보니 ‘일본최남단’이라는 비석과 함께, 저 멀리 오래전에 영업을 그만둔 천문대가 보였다. 비석에 쓰여있는 ‘쇼와 53년‘ (1978년)이라는 표시가 세월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섬의 이곳저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는데, 넓지 않은 곳이라 더 이상 갈만한 스폿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민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에서 잘 보이는 ’ 남십자성‘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 남십자성이 빛나는 섬 하테루마‘라고 쓰여있는 맨홀뚜껑을 몇 번 볼 수 있다.
배는 4시 반에 뜨는데, 정말 할 것이 없어서 다시 취락 쪽으로 돌아갔다. 어디든 들어가서 시간을 때워야겠다 싶어서, '민피카'라는 빙수집에 들어가서 빙수를 먹었다. 여기도 맛이 기가 막히다. 오키나와에서 흑당 빙수는 어디에서 먹어도 실패가 없는 것 같다.
하테루마에서 4시 반에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오니 6시 남짓이 되어있었다. 이곳 이시가키는 소고기가 꽤 유명한지라 기회가 되는대로 먹어두고 싶었다. 시내 쪽에 '키타우치 목장'이라는 곳을 들렀으나, 마침 영업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마에자토 쪽에 지점이 하나 더 있어 그곳에서 식사를 하였다. 세트메뉴로 여러 소고기 부위와 밥, 김치, 그리고 각종 구워 먹을 야채들이 나왔다. 소고기 부위에 대해서 자세히 알면 비교하면서 먹을 텐데, 고기에 해박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역시 이시가키규.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마침 냉면도 팔고 있어서 시켰는데, 한국 냉면이랑 맛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맛은 한국 것보다는 못하였다.
오늘은 여행하면서 딱 하루 호텔에서 자는 날이라 체크인을 하는 와중에, 마침맞게 산신과 북을 치며 로비에서 저녁 공연을 하고 있었다. 공연을 보고, 호텔 내 대욕장에서 목욕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