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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부신세실 Jun 11. 2024

드디어 성공

집 귀신 끌어내기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뛰듯이 도착해도 줄이 길게 서 있다. 이번 달은 접수번호 51번을 받았다. 첫 달은 39번, 두 째달은 25번,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 이른 새벽부터 긴 줄을 보며 어떤 이는 고시공부 만큼이나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번 달에는 날이 추워지니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 하는 기대를 했는데, 갈수록 대기 번호가 뒷자리 수다. 이번 달에는 제발 등록할 수 있게 될 것을 고대하며‘장수 수영 초급반’상황을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세 자리가 있단다. 

일단은 접수 했으니 등록만 하면 된다. 등록 시간은 1시간 남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주머니 속의 묵주를 굴리며 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대기자로 접수 1번을 신청해 놓고 왔었다. 결원자가 있어서 연락했는데 불통으로 다음 대기자가 등록 했단다. 

이런 원통함이. 남편에게 물어 보았다. 수영장에서 연락 왔었느냐고, 모르는 전화가 오긴 했었다고 한다. 에구구  갑갑한 양반! 네가 누굴 위해 이렇게 몇 달 째 고생하는데 한심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내향적인 집 귀신 남편을 끌어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온갖 억지소리를 해도 요지부동 오죽하면 나의 버킷리스트를 적어 주면서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다.

 나에게 못할 일을 해놓고도 먼저 화내고 반성하거나 개선의 여지도 없는 남편이지만 버릴 수도 없고, 사는 날까지 한 이불 덮고 살아야하니 어쩌겠나. 

요즘 점점 전형적인 꼰대 노인이 되고 있으니 걱정이다. 아마 몇 년 전 암 수술을 하고 면역력 저하로 만사가 귀찮아 졌나보다. 자꾸 강요하면 잔소리로 들어서 내가 직접 행동 개시를 해서 수영장에 다니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들이 고3 때 수능시험을 보고나서 공부에 지친 신심 체력 강화를 위해 둘이 수영장을 다녔던 적이 있었다. 아들은 꾸준히 다녀서 접영까지 배웠지만, 남편은 수영강습 끝나고 출근하가기 벅차다며 몇 개월 만에 포기 했다. 그래서 다시 수영에 도전하고  운동 후 샤워하면 개운해서 좋고 뭔가 배운다는 성취감도 있으니 무조건 다녀야 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등록하기 위해 몇 개월 쫓아다니다 드디어 오늘 성공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수영복과 수경을 고르고 준비를 하는데도 별로 적극적이지 않고 쉽게 결정하지 못해서 옆에 붙어 앉아서 검색하고 주문을 했다. 물론 결제는 내 통장에서 지출되고, 벗고 놀게 하는 것이 이리 힘들어서야 진이 빠진다. 내 돈 들여 수영장 등록해 주고 수영복 세트 사주고, 도대체 감사해 할 줄 모르는 남편의 뒤 꼭지에 대고 주먹을 휘둘러본다.  


 몇 달의 새벽 시간과 내 돈을 투자해서 집 귀신이 밖으로 나왔으니 같이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또 찾아 봐야겠다. 신앙생활을 같이 하는 것 외에는 없었는데, 이제 늙어 가면서 같은 취미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동행이라 생각된다. 

수영을 배우게 한 이유 중에 한 가지 더 욕심 부린다면, 수영을 곧 잘하고 있는 외손녀와 셋이서 수영장에 가는 것이다. 

정작 나는 호흡이 터지지 않아서 자유형이나 평형은 못하지만 배형은 할 수 있다. 

손녀가 앞장서서 물살을 가르며 출발하고 할아버지가 뒤따르고, 생각만 해도 신나고 행복하다. 나의 바람을 위해 이제 시작한 남편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도 꾸준히 다니면서 운동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사귀며 활기찬 사회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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