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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성 Dec 28. 2023

3. 찌질이 연애사

환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내가 노래라도 부르리라

대머리가 유난히 아름다웠던 장두환 선생님을 뒤로하고 온천국민학교로 전학 갔다.

왜냐하믄 용화리로 이사했기때문이다.

큰아버지의 거대한 논 옆에 쓰레기장으로 쓰던 거의 버리는 땅을 아버지가 사셨다.  

쓰레기반 돌 반이었더랬다. 

그걸 몇 달 동안 아버지, 엄마, 할머니 셋이 맨손으로 다 정리하시고 거기에 방 칸짜리 단열 제로의 부르크 집을 후다닥 지으셨다.

아버지에겐 궁궐 같은 집을 지으신 거다.


아버진 한동안 행복해 하셨다. 

그러나 나는 왜 그런지 그다지 좋았던 기억이 없다. 오히려 위축되는 느낌같은 느낌?

왜냐하믄 우선 주변 집들은 집도 큰 데다 

기와집에 높이도 훨씬 높았다.

이에 반해 우리 집은 쓰레트 지붕에 집도 작았다. 대문도 우아하게 학이 그려진 동그랗고 커다란 손잡이가 달려있는 위풍당당한 

스텐 철문이거나, 

최소한 늠름하고 커다란 사자 손잡이라도

붙어있어야 는데, 

우리 집은 입구에서부터 기가 죽었다. 

그런 생각이 든 게

국민학교 4학년 때쯤 이었던 거 같은데...

어린놈이 이성의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집은 내가 좋아하는 경진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경진이가 내가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크게 실망할 것이다. 가끔 길을 가다 술 취해 휘청거리며 지나가시는 아버지를 보게 되기라도 하면 나는 빛의 속도로 저 멀리 도망쳐야 했다.

경진이가 그게 우리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되기라도 하믄 아이고야!

끔찍한 상황이다.


경진이는 자주 가다마이를 입었었다. 주로 빨간색이었는데 가끔 초록색이나 연한 갈색 체크무니도 입었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이런 옷 나도 사주면 안 되겠냐며 경진이 옷의 생김새를 설명해드렸더니 가다마이란다.

우린 그거 비싸서 못 사준댄다.

농담이 아니라 그 가다마이는 대학에나 가서 처음 입어봤다. 그것도 경진이가 입었던 고상함을 기본으로 각이 잡힌 가다마이가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훌렁훌렁... 

참고로, 경진이가 입었던 건 부르뎅표 가다마이였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경진이가 웃는 게 좋았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놀 때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미소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숨이 막히는 거 같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경진이 눈을 의식하며 뭔가 알짱거렸다. 그러다 함 웃어주면,

아싸라비야!

환상의 세계였다.


그러던 중 한 번은 누군가 앞에서 선생님이 나오라 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경진이 미소가 더 커졌다.

내가 그동안 받았던 미소보다 열 배나 큰 미소였다. 그때 그 녀석이 불렀던 노래가

조용필의 노래였지 않나 싶다.

엄마한테 조용필 테이프를 사 와야 한다고

억지장을 부렸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들은 노래가 '일편단심 민들레''미워 미워 미워'였다.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들릴 듯 말 듯 그 노래를 읊조려

노래 좀 하는 놈으로 비추는 전략으로 행동했고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우리 집 정서나 환경을 고려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당연히 죽음과도 바꿔야 할 정도의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행동이다.

그건 그거고 어쨌거나 기회가 왔고 눈을 질끈 감고 그동안 혼자 갈고 닦았던  '미워 미워 미워'를 정성을 다해 불렀다.

부르면서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거의 쓰러질 지경이고, 

노래를 어찌어찌 다 부르긴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꽤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진이는 물론 존재감 일도 없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마저도 친절한 미소를 보내 주는 것이 아닌가?

나의 노래 연주 최초 데뷔는 이렇게나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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