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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성 Dec 30. 2023

4.보철이와 장군이형

보고 싶다 보철아~!

모던클로이스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유년기를 소개하면서 보철이와 장군이형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 거 같아 이왕 얘기 보따리를 푸는 김에 보철이와 장군이형 얘기를 잠깐 풀어본다.

보철이. 정확하게는 이름 장보철, 나이는 나랑 같음. 별명은 멀때.

보철이는 내가 가재골로 넘어온 후 나의 단골 베스트 프렌드였으며 내가 할 일 없이 빈둥거릴 때 보철이 역시 단 한 번도 빈둥거리지 않을 때가 없어 내가 놀고 싶으면 보철이는 언제나 ready enough였다. 


보철이는 나랑 지 먹기, 구슬치기, 찜뽕, 썰매 타기, 오징어게임 같은 경쟁 종목에서 내가 승리의지가 없을 때만 빼곤 단 한 번도 나로부터 승리의 맛을 보지 못했던 나에겐 더없이 놀기 좋은 만만한 상대였다.


보철이는 초가집에서 살았다. 가재골 초입에 있었던 우리 동내는 스무 채 남짓의 집들이

함께 모여 있었는데

우리 집이 제일 후진 측에 들었는데 보철이네 집은 완전 디퍼런트 리그였다. 흑집에 볏짚을 얹은 초가집 (나중에는 녹슨 함석지붕이었던 걸로 기억).

방은 다섯 식구 누우면 꽉 차는 사이즈 단 한 칸.

부엌은 가마솥 얹은 흑 부뚜막.

대문은 아예 없었고

이 집이 우리 동네 공터를 마당 삼아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철이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와 단짝이셨고 우리 아버지가 미장일 하실 때 보철이 아버지는 굳세게 데모도일만 고집하셨다. 

아버지가 품값 두 배나 되는 미장일을 배워보자 하셨지만 무슨 소리냐! 난 이게 좋다! 하면서

결코 다른 일에 한눈파는 일이 없으셨다.

아~ 얘기가 딴 데로 빠지고픈 유혹이 막 샘솟지만 정신 차리자. 다시 보철이로.


보철이는 국민학교 졸업할 때 까지도 왜 그랬는지

끝내 글을 읽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이상하게 보철이를 마주치지는 않아 그의 학교생활에 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보철이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혼자 거나

아님 나와 함께 했었다.

우리는 마치 동내에 짝을 지어 들로 산으로 사방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누렁이와 백구 같은 존재였다.


내가 알고 있기로 보철이는 태어나서 딱 한번 칭찬을 받았다. 보철이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보철이 식구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매일 저녁이면 우리 집에 와서 테레비를 봤다.

하루는 그토록 테레비를 좋아하는 보철이가 오지 않아 물었더니 배가 아파서 못온덴다. 왜 아프냐니까 이놈이 밥 잘 먹는다고  칭찬이란 걸 처음 해줬더니 밥을 한 그릇 두 그릇 세 그릇 네 그릇까지

무섭게 먹더니 갑자기 울더란다.

배 터질 거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근데 가끔 미운짓도 했다. 미운짓이라기보단 답답해서 어린 내가 속이 터졌었던 거 같다. 분명히 너무나 답답하고 속이 터져 가끔 안 볼 것처럼 싸우기도 했던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한 개가 없다.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고 교회를 다니면서 보철이 하고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보철이는 중학교를 들어가지 않아 가끔 보면 혼자 외로이 막대기 같은 거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보철이가 처량맞게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마저도 잠깐, 언제부턴가는 보이지가 않다가 갑자기 한 번은 아주 신이 난 모습을 봤는데 산 넘어 오도바이족들하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년이 흘렀을까?

보철이하고는 쓸쓸하고도 허무한 이별을 하게 됐다.


보철이의 친형이 장군이형이다.

이름은 장순철이었는데 그 멋진 이름을 놔누고 장군형의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모두가 장군이라 불렀다. 더군다나 장군이형은 장군과는 너무 동떨어진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왜 장군이라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난 장군이 형 하고도 잘 놀았다. 희한한 건 보철이랑 셋이 놀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테레비 볼 때  빼곤 단 한 번도 같이 놀지 않았다.

보철이하곤 주로 누렁이와 백구가 자연 속에서 뒹굴듯이 노는 것처럼 아름답게 놀았다면

장군이형은 주로 자극적이고도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장군이형은 부지런했는데 늘 땅바닥을 보면서 다녔고 뭘 몰래몰래 주섰는데 그게 담배꽁초였다. 그것을 부지런히 모아서 담배를 말아 피웠던 것이다.

나도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같이 줍게 되었고 함께 굴다리 밑이나 동내 어두운 곳에서 연기를 품어내며 킥킥거리고 깩깩거리면서 그렇게 놀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형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지 다양한 채널의 현란한 성인 잡지를 가져다가 나의 눈을 열 배나 크게 만들기를 자주 하였다. 1차원적인 조악하게 그려진 만화 버전에, 2차원의  잡지 사진이나 카드 버전, 심지어는 3차원 사진 버전으로, 이게 아주 환상적이었는데 망원경처럼 생겨서 버튼을 하나씩 누르면 다른 입체 사진으로 넘어가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아이템까지 가져왔다. 정말 이럴 땐 장군처럼 느껴져 존경심이란 걸 처음 느끼게 해 주었다.


형하고 논 것 중에 제법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 겨울이면 형내나 우리 집이나 매일 먹는 게  김치를 주재료로 한 반찬에 밥을 먹는다.

아침엔 김칫국, 점심은 아침에 먹었던 식은 김칫국, 저녁엔 김치 청국장, 다음날엔 아침엔 김칫국, 점심은 라면에 김치, 저녁엔 김치찜. 이런 식이다.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건 아저씨들 고수돕 칠 때 담배연기 실컷 들이마신 후 팔팔통닭 얻어먹는 거랑 명절 때뿐이었는데, 

형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획 실행했다.

눈이 많이 올 때를 기다렸다가 빨간 열매에 집에 남아있던 농약을 주사위로 삽입해 그것을 산 여기저기에 놔누고 며칠 있다 가보면 꿩들이나 끼가 누워있음 들고 오면 된다. 털 뽑고 내장제거 하는 건 아버지가, 요리는 엄마가 해주신다.


의 노스탤지어의 기초는 보철이와 장군형 덕분에 더 강해지고 견고해졌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의 중심에 두 형제가 있었다.

나의 결핍이 힘으로 전이되게 할 기초가 만들어지고 있는걸 나는 그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의 유년기 6년 동안 내 친구가 되어주었던 지금은 볼 수 없는 보철이와 장군이형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보철이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뒷산에서 굳어 있는 몸으로 발견됐다. 신발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옆에는 농약과 본드 한통이 너부러져 있었다 한다.

보철이는 학습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이고 외로워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렸고 얼마 안 가 따돌림을 당했던 거 같다. 장군이형은 내가 귀국한  얼마 안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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