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 여행 - 한국과 미국 사이> 저작권법
▲ ‘1790년 미국 최초의 저작권법’과 ‘미국 저작권청’ 게재 사진을 이용하여 필자가 제작
글을 쓰면서 논거(論據)를 보완하거나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타인의 저작물 일부를 인용(引用)할 때가 있다. 이 경우 타인의 저작물 사용 시에 합당한 기준을 반드시 염두에 둘 일이다.
지금은 정보기술 발달에 따라 다양하고 방대한 저작물이 생산되고, 디지털 매체를 통해 빠르게 소비된다. 자신의 저작물이 무단 사용될 취약성과 함께, 타인의 저작물을 부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저작권자와 이용자 모두 <저작권법>에 관한 기본 소양(素養)을 갖추는 것이 상호 권리 존중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글은 합법적으로 타인의 저작물 이용을 허용하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의 이해를 통해, 작가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작권법> (법률 제20358호, 2024. 2. 27.) 제2조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한다. 제4조는 법에서 말하는 저작물 유형을 예시(例示)하고 있다.
“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이며,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존속(동 법 제39조)”함을 원칙으로 한다. 저작재산권은 매매나 상속 또는 이용 허락이 가능하며(동 법 제46조 등), 저작권 침해 시 손해배상 청구나 형사상 처벌을 통해 그 권리를 보호받는다.
한편, 동 법 제1조는 저작자 권리보호와 “저작물 공정 이용”의 형평을 위해 저작재산권의 제한(동 법 제23조~제38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온전한 독자적 창작물이라기보다, 전승(傳承)되어 온 학문·예술의 영향과 교육을 통해 일정 부분 도움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공정 이용(公正利用, Fair Use)’이란 저작권 있는 저작물을 저작권자 허락 없이 제한적 이용을 허용하는 미국 저작권법(17 U.S. Code § 107)상의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의 국내 이행을 위해 <저작권법> 일부 개정(법률 제11110호 2011. 12. 02.)을 하면서, 국제적인 저작권 보호 기준 준수와 창작물 활용의 유연성 확대를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다.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인용’하려면, 상기 제1항의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제1항에 해당 여부는 동 법 제2항의 4개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인용하고자 하는 저작물이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동 법 제4조)에 해당하는지, 저작권 보호기간을 경과했는지, 외국 저작물의 경우 국제 협약(베른협약 등)에 따라 보호받는지를 우선 확인한다.
저작물 사용이 상업적 목적보다는 교육·연구 등 비영리적 목적인 경우, 패러디·비평 등의 목적이 있을 때 공정 이용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이용 목적이 "공익적이고 창작적 가치를 추가"하는 경우 공정 이용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24. 7. 11. 선고 2021다272001 판결).
미공개된 저작물보다는 공개된 것이, 창작성이 강한 저작물보다 사실적인 정보의 공정 이용이 인정되기 쉽다. ‘대법원 2024. 11. 20. 선고 2021다278948 판결’에서 “저작물의 성격이 창작성이 강한지”, “사실 기반인지”에 따라 공정 이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저작물의 핵심적인 부분을 사용했거나 사용된 분량이 너무 많으면 공정 이용 인정이 어려울 수 있다.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 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정 이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도5835 판결).
저작물 이용이 원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원작의 판매나 시장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우 공정 이용이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대법원 2024. 5. 9. 선고 2020다250561 판결).
이상의 검토결과 상기 ‘제1항’에 해당한다면, 저작물의 출처(저작자의 실명ㆍ이명 등)를 명시하여(동 법 제37조)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 등에” 인용할 수 있다(동 법 제28조).
그러나, ‘공정 이용’에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각 분야별 수량화(數量化) 된 구체적인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이 미흡하며, 대법원 판례 축적도 불충분한 실정이다. 이로 인한 저작권자와 이용자의 혼란은 상당기간 불가피해 보이며, 결국 법원의 최종 판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한점이 있다.
‘퍼블릭 도메인’이란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창작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저작물의 소유권은 대중에게 있으므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저작권 포기(기증 등), 보호기간 경과,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동 법 제7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해당 저작물 이용 시 저작권 만료 여부와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을 확인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저작물을 인용할 때는 “저작물의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동 법 제37조 제2항)”하고,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복제하면 표절(剽竊)에 해당되어 저작권법 위반으로 간주(看做)될 수 있다.
인용하는 저작물의 유형 또는 사용 분야에 따라 적절한 인용 스타일을 적용하면 된다. APA (미국 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MLA (현대 언어 협회, Modern Language Association), Chicago, Harvard 스타일 등이 각 학문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다.
※비고: Chicago/AD(Author-Date), NB/Notes and Bibliography; STD/Standard for Legal Citation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교수와 최재천 교수가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도킨스 교수가 최교수의 의견에 크게 공감을 표시한다.
"당신의 의견을 내가 학생들에게 사용해도 되겠오?" 도킨스 교수가 최교수에게 허락을 구한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요." 최교수의 답변이다(유전자로 본 삶의 의미. 최재천의 아마존, 2023).
그들은 지적재산의 소중함과 타인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자세가 체화(體化)된 모습이다.
두 석학이 마주 앉아 즐겁게 나누는 대화가, 놓치지 말아야 할 큰 의미로 다가왔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