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안하게 유럽 자동차 여행하기> 남유럽여행
▲ 카탈루냐(Cataluña) 마음의 고향, 몬세라트 수도원(Abadia de Montserrat) © Joe Shlabotnik
호텔 조식 후 파도가 일렁이고 야자수가 늘어선 드넓은 해변 산책길에 나선다. 이른 시간에도 반려견과 함께 혹은 혼자서 백사장에 사람들이 보인다. 호텔 정원에서 카드키로 바로 해변을 출입할 수 있어 편리하다. 구름이 잔뜩 덮인 아침 8시가 넘은 시각이라 해돋이는 기대할 수도 없는데, 갑자기 새빨갛고 커다란 아침해가 구름 한자락을 걸친 채 바로 손에 닿을 듯 얼굴을 내민다.
광활한 바다 저 끝 수평선이 마치 지척(咫尺)인 양 황홀한 선물을 한다. 돋을볕으로 붉게 물드는 하늘과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며 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름답다, 장엄하다, 멋지다’ 이런 진부한 어휘밖에 표현할 방법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10월 바르셀로나(Barcelona) 아침기온은 27℃, 오늘부터 고성(古城) 순례길에 나선다. 첫번째 파라도르(Parador)로 향하는 도중 몬세라트 수도원(Abadia de Montserrat)을 둘러보기로 한다.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광활한 농장에는 올리브 나무(Olivo)가 무성하다. 몬세라트 산 부분 자연보호 구역(Reserva Natural Parcial de la Muntanya Montserrat)에 접어들자, 비바람에 뭉툭해진 기암괴석이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병풍을 드리우고 서 있다.
카탈루냐(Cataluña) 지역에 위치한 몬세라트(Montserrat, 해발 1,236 m)는 ‘톱니 모양의 산’이란 뜻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등의 건축으로 유명한, 스페인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 06. 25.~1926. 06. 10.)에게 영감을 준 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몬세라트의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과 외관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약 1시간을 달려 몬세라트 수도원(Abadia de Montserrat)에 도착한다. 888년 최초로 기록에 언급된 이곳은, 9세기 말경에는 현존하는 ‘산 아시스클로(San Acisclo) 예배당' 등 네 개소에서 수도자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https://www.montserratvisita.com/en). 1025년 주교인 올리바(Oliba)가 몬세라트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성모상이 유명하다.
독특한 형태의 바위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몬세라트 자연보호 구역의 남동쪽 산중턱에 수도원(해발 약 725 m)이 자리하고 있다. 꼬불 꼬불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수도원에 도착하니 차량 출입은 차단하고 지하주차장 이용이 가능한데, 수많은 차량과 관광버스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피부색이 짙어 ‘모레네타(La Moreneta)’라고도 불리는 ‘몬세라트 성모(La Virgen de Montserrat)’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색 조각으로 무척 아름답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ón XIII)에 의해 ‘카탈루냐의 수호성인(Patrona de Cataluña)’으로 선포되었다(출처: 上同). 신앙과 문화,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상징으로써, 성모상의 오른손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몬세라트 학교(Escolania de Montserrat) 소년 합창단의 성가(聖歌) 2곡(Salve, Virolai)을 월요일~금요일 오후 1시와 일요일 12시 바실리카(Basilica)에 참석하여 감상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파라도르로 향하는 도로변 저 멀리 까마득하게 산아래 마을들이 보인다. 아내는 고산증으로 심한 고생을 한 탓에 높은 곳에 오르면 현기증에 시달린다.
산을 내려오니 도로 양쪽 높고 낮은 산을 배경으로 어느 마을에나, 농경지와 전원주택 사이에 중세풍 성당과 첨탑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몬세라트에서 약 1시간 거리의 카르도나 파라도르(Parador de Cardona)에 도착한다. 우리가 선택한 가장 전형적인 중세 성(中世 城)에 위치한 호텔 중의 하나이다. 9세기경에 세워진 이 성은 카르도나 가문의 군사적 요새이며, 11세기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출처: https://paradores.es).
성에는 원통형 '처녀의 탑(Torre de la Minyona/높이 약 15 m, 지름 10 m)’이 있는데, 원래는 방어용 망루로 지어졌지만 이후 이 지역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전설의 배경이 된다. 귀족의 딸인 아달레스(Adalés)가 경쟁국 무어 왕자(Moorish Prince)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이 탑에 갇히고 결국 비탄에 잠겨 사망했다고 전해진다(출처: https://www.cardonaturisme.cat).
성 내부에는 탑,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고딕 양식의 홀, 카페 등이 있다. 전설의 탑에 올라 카르도나, 피레네 산맥(Pyrenees), 카탈루냐(Cataluña) 전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탑에서 내려와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서 호텔이 선물한 티켓으로 간단한 주류, 음료수, 커피를 선택하여 창 밖 풍광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낸다.
성 투어와 따끈한 커피를 나누고, 일찍 호텔에 돌아온다. 엄선한 파라도르 5개소에 맞춘 스페인 여정에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이다. 이번 로드트립의 주요 컨셉은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인데, 고성(Old Castle)호텔을 선택한 순간 편안함은 사라진다. 편리한 주차장과 이동시설을 갖추고 캐리어 운반에 어려움이 없는, 현대식 호텔과 거리가 먼 이토록 난감한 고행길을 자초할 줄은 몰랐다.
전망이 빼어난 곳은 오래전 전원 지역에 터를 잡은 호텔인 경우가 많아서 주차장과 객실 연결이 되지 않은 곳이 많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경우, 석재 보도(步道)와 기다란 회랑을 따라 캐리어 5개를 옮겨야 하는 파라도르는 낭만과 맞바꾼 노동의 추억을 남긴다.
높은 언덕 꼭대기에 우뚝 선 첫 번째 파라도르 성채 위에 바람이 몹시 거세다. 역시나 주차도 어렵고 짐 운반도 힘들다. 독일 로텐부르크(Rotenburg ) 숲속 호텔과 슬로베니아 블레드(Bled) 호숫가 전원 호텔은 우아하고 낭만적인데, 높은 언덕 꼭대기 거센 바람속에 우뚝 솟은 우람한 파라도르는 아내가 불편해할 만한 곳이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이곳에서 가장 괜찮은 객실 중 하나를 예약했건만 평생 처음 겪는 위생상 위해(Hygenic HAZMAT)가 발생한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건, 아내에게는 분명 사건이었다. 결국 또 한 번 아내는 속탈이 나고 극심한 구토와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 늦은 시간에 동급 수준의 인근 호텔을 찾아 옮길 수도 없고, 매니저가 직접 상황을 확인한 후 다른 객실로 교체만이 최선이었다.
'천년이 넘은 고성(古城)에서 어떤 일인들 상상하지 못하랴,' 스스로 위안하기로 한다. 고대하던 파라도르의 첫 여정에서, 잊지 못할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Everything Happens for the Best!’라고 생각하자. 더 나쁘지 않은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 두 번째 파라도르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