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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Feb 25. 2024

깊어가는 가을에

행복했던 기억들만 간직하게 하소서

"눈발이 비치네"

힘없이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고 힘없이 나온 말이다. 퇴색되어 떨어지는 낙엽처럼 당뇨 안眼은 계절도 우유부단해진다. 기온이 내려간 날씨에다 우중충한 회색빛은 영락없는 첫눈이었을 게다. 그렇게 마음대로 사물과 색상을 바꾸어놓는다. 만만한 게 처방받은 인공눈물만 시도 때도 없이 주입한다. 답답한 마음을 떨어내듯 마른 나뭇잎들이 쉴 새 없이 나풀거리다 떨어진다.


그를 볼 때마다 이만저만 안타까운 게 아니다. 별다른 약을 처방받지 못하는 게 당뇨로 인해 망가진 시력이라니 어이가 없다. 당뇨 망막병증, 백내장, 녹내장수술까지 받았으나 한쪽 눈은 실명이요 나머지 한쪽 눈마저도 간당간당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과 같다. 시력검사를 할 때면 보이지 않아 “앞으로 더 앞으로” 란 소리를 들으며 다가간다. 약도 안경도 소용없다는 지경에 이른 상태다.


눈뜬 봉사를 대하는 것 같은 그 사람을 볼 때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눈 건강의 중요성이 절실해진다. 몸이 좀 피곤해도 작은 티끌이 들어가도 못 견디게 답답하거늘 얼마나 고역일까 싶다. 시력장애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크나큰 요인이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깊어지는 생각들이 한없이 떠돌아다닌다. 한때 그 고왔던 단풍도 낙엽 되어 갈 곳을 읽고 떠돌아다닌다. 머지않아 곧 첫눈이 내리겠지. 스산하게 느껴지는 날엔 자연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남 말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내 눈도 정상은 아니니 말이다. 틱장애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애로가 있어서다. 누구의 탓도 아니련만, 눈부신 날보다 눈 부은 날이 더 많았던 지난날들이 한없이 솟구쳐 오른다. 칠십 년대 칠월은 이십 대의 엄마에겐 잔인하리만치 가혹했다. 바람눈이라는 산후 풍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후유증으로 괴롭힐 줄이야. 어처구니없게도 눈에 바람이 들어가 생긴다는 현상치고는 너무도 황당했다. 거리가 물결 같고 물체가 겹쳐 보이고, 비슷한 색상을 구별 못하고…. 덥다고 선풍기 바람 쏘이고 찬물에 손 넣었다고 생긴 것이라니, 몸조리를 잘못한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한의원을 내 집 드나들 듯하면서 한방치료에 눈을 맡겨야 했다. 눈꺼풀 안쪽에서 피를 빼고 침을 맞고, 한약을 복용하고 …. 눈에 붕대를 감싸고 앞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다반사였다. 혹독한 시각장애 체험을 한 셈이었다.


당시 급한 불은 껐으나 완전한 마무리는 되지 않았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잔불로 바람 부는 날이면 눈알이 시리고, 피곤하면 인상 쓰듯 찡그려지는 현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망가진 그의 눈처럼 시들어 나뒹구는 단풍처럼 이제는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안과에 가도 신통한 답을 듣지 못한다. 신경과에 가 봐도 심리적이 현상이 아닐까 하는 애매한 답만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 쪽으로 시도하다 지금은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까지 복용했으랴. 갈수록 대인관계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맘과는 달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니 틱장애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내가 장애의 고충을 알기에 장애자의 고충을 나누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삶도 세월에 따라 맡겨진다. 상처를 입고, 굽고, 꺾인 채로 자라나는 나무처럼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죽는 날까지 현재를 사랑하고 운명에 순응한다면 기꺼이 삶을 받아 내리라.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그 사람보다는 볼 수는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라고 애써 달랜다. 언제나 한계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데 의학을 탓해서 뭐 하겠는가. 혼자서 하는 운동을 찾아 해대던 등산, 수영, 마라톤이 건강을 이마만큼이나 지탱해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그만 잘못된 눈을 어루만져 주면서 함께 가야 할 때다. 떨어지는 낙엽이 눈발로 보이지 않는 것만도 어딘가. 홀로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지 않은가. 이제는 그냥저냥 받아들이며 품어주며 잘 놀아주는 수밖에는 없지 싶다. 시력이 좋았던 그리움 지그시 누르며 오솔길을 걷는다. 숲 내움에 마음을 열어 바람 소리 새소리를 담는다. 잊고 싶은 기억일랑 자근자근 밟게 하시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간직하게 하소서. 깊어가는 이 가을에 소복소복 쌓여가는 깊어지는 기도다.


나에게 / 양 순 레


낙엽 살랑이는

오솔길에서

고운 사랑 하고 싶구나


노오란 은행잎에

바알간 단풍 글로

맑은 고백 나누고 싶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염없이 걸어보고 싶구나


깊어가는

이 가을에

두 손 꼬옥 붙잡고


나의 너

너랑

그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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