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의 원천은 외가댁이지 싶다.
외가댁은 세탁소를 운영하셨다. 지금도 마른빨래 위를 지나는 스팀 다림질 냄새는 나를 그 시절 그 집으로 돌려놓는다.
세탁소 위층 집 거실에는 발로 밟아서 작동하는 수동 재봉틀이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엉터리 영어를 지껄이며 선생님 놀이를 하는 책상이기도 했고, 페달이 있는 상상의 피아노가 되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바늘을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게 내버려 두셨다. 밥때가 아니면 뜨개질을 하시거나 화투장을 맞추곤 하셨는데 화투장 그림이 어떻게 짝이 되는지도 이때 배웠다. 뜨개질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자고 일어나면 옷 한 벌이 뚝딱 만들어지는 거 같았다.
허리끈이 있는 하얀 울 니트 원피스. 외할머니가 초등학생인 나에게 떠주셨던 원피스다.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도 하고 싶은데...'
내성적이었던 나는 용기를 냈다. 가르쳐 달라고 조르니 뾰족한 대바늘은 위험하다며 젓가락을 가져오라 하셨다. 젓가락 두 짝. 이것이 나의 첫 뜨개 수업이었다.
젓가락 길이라고 해봐야 20cm 남짓, 코를 만들면 15cm도 안되었을 게다. 그래도 그게 어찌나 신기하고 재밌던지 뜨고 풀고를 반복했다.
한참 훗날 알았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건 정식 기법이 아니었다. 그냥 어린아이가 혼자 고리를 만들고 놀 수 있도록 비스름하게 알려주신 거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어쩌면 귀찮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웃음이 난다.
어찌 되었건 외할머니는 나에게 즐거움을 알려주셨다. 당신은 의도치 않으셨겠지만 내 호기심이 흥미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본격적인 작업을 하는 요즘도 나는 한결같이 생각한다.
기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이건 뜨개질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많은 순간에 기술적인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 큰 아이가 9살, 딱 그맘때 내 나이다. 딸아이가 "엄마, 나도 이거 가르쳐 줘." 하는 걸 보면서 문득문득 어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슴푸레 외할머니를 흉내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