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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스시나 Mar 02. 2024

나를 소중히 여기다

경험, 기억을 통해


당신을 소중히 여겨요.

와인병에 입힐 수 있는 보틀 크로스에 'Cherish you'를 새기는 중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를 찾으면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만 적어두면 쉬 잊히지만 뜨개나 위빙을 해두면 오래 기억된다. 작업하는 동안 내내 그 문구를 되뇌다 보니 문장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삶의 모토로 마음에 새기게 된다. 되고자 하는 모습에 지침이 되는 문장들은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된다.



기질과 성장.

판단과 행동이 빠르며 말을 조리 있고 명확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나는 생각과 고민을 오래 붙잡고 있는 편이고 긴박한 순간에는 정확한 어휘가 제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많은 일들이 시간을 먹고, 예상보다 더 뒤로 밀린다. 가끔은 누우려고 누웠다가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아, 진짜! 그때 그 말을 헸어야 했는데!'하고 말이다.

엄마는 가스레인지 위에 행주를 삶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빨랫비누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냄비 밖으로 넘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어? 어?! 저거 어쩌지? 엄마에게 말해야겠는데?'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계속 빨래 냄비는 넘치고 있었다. 엄마의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스 불을 끄지도, 엄마를 부르지고 않은 채 냄비를 보고 가만 서 있는 내 뒷모습이 답답했던 게다. 아득하니 어딜 다녀온 것 같은 기분...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린 나의 모습이다. 그날이 유독 특별한 게 아니다. 나에게 자주 있는 상황이었다. 

한 번은 엄마와 이모가 나를 데리고 의상실에 갔다. 의상실에 따라간 기억이 여러 차례인 걸로 보아 당시 어른들은 백화점 쇼핑보다 의상실에서 옷을 맞춰 입는 것이 흔했나 보다. 어른들끼리 원단을 고르며 대화를 나누고 나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 잡동사니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스테이플러가 보였다. 저걸 콩콩 누르면 종이가 찍히던데 어떻게 쓰는 거지? 찰칵. 누르는 순간 내 엄지 손가락 지문을 뚫고 스테이플러 침이 박혔다. 스테이플러를 거꾸로 잡고 누른 것이다.

'윽! 아야!' 

입에 지퍼를 채운 것처럼 작은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침을 빼내고 피가 나는 엄지 손가락을 휴지로 감싸서 꾹 쥐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대체로 그러했다. 미련스레 조심스럽고, 조용히 시도하고, 다급함에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느껴지는 그런 내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후 나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바뀌기 위해 애쓰며 자랐다. 물론 아직 나는 그러하다. 기질이지 않은가. 품어야 할 나의 기질.



과거의 나를 항상 떠올리며 산 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과거는 안개 낀 숲처럼 구체적이지 않고 뿌연 느낌이었다. 그러다 최근 10여 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과거가 불쑥불쑥 나를 찾아올 때가 많아졌다. 

'참, 그런 순간이 있었지.'

'쟤는 어쩜 저렇게 나랑 다른가. 희한하네.'

'맞다, 맞아. 나도 저런 면이 있지.'

'엄마도 이런 이유로 나를 혼냈었지. 어쩜 그리 똑같냐.'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을 몇 년 전부터 SNS나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각각의 기억이 남기는 색채감이 있다. 아득함 속에 강렬한. 그 감정을 표현한다. 영감을 받는 문장들도 결국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것이 내가 작업을 풀어가는 방식인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건 나의 작업 속에는 '내'가 있다. 그 과정에서 미성숙했던 나를 예뻐하고 키우고 보듬는다. 

No rules. Show yourself.

아니스시나의 슬로건이라고 해야 하나. 규칙에 얽어두지 말고 너를 표현하라. 

앞으로도 그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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