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커서 뭐가 되어야 할까
초등학생 때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미술시간에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스케치북을 찢어 한 손에 들고는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올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엄마 아빠는 저 멀리서부터 손에 큰 종이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는 오늘은 어떤 수식어를 붙여 잘했다 할지, 어느 방향으로 뒤집어져 놀라움을 표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게 아니라 그런 엄마 아빠의 반응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더 잘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더 좋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학기 초가 되면 항상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과, 취미, 특기, 장래희망은 필수 항목이었다. 3학년이 되어 장래희망이 ‘화가’라고 말했던 때에 우리 반에 화가지망생은 나 포함 8명이었다. 앞 번호부터 나를 지나쳐 내 뒷번호까지 화가가 꿈이라는 친구들을 보며 이상한 충동성이 들었다. ‘난 화가 말고 다른 거 할 거야’라는 생각.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지 않았던 그 어린 마음에 일찍부터 내 꿈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남들과 차원이 다른, 나만의 특별하고 멋진 꿈을 갖기 위해
후보 1. 파티시엘
한창 꿈빛 파티시엘이라는 만화에 빠져 감딸기의 인생에 나를 대입해 봤다.
특별하고 멋있고, 내가 만들 환상적인 딸기 타르트를 먹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니 난 파티시엘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좋았어, 이제부터 내 꿈은 파티시엘이야. 이름부터 멋지잖아. 앞으로 자기소개를 할 때 뽀대 좀 나겠어”
그러나 이 꿈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꿈빛 파티시엘이라는 만화가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아 그 시절 내 또래 여자애들이 모두 감딸기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후보 2. 목사님
설교시간에 아빠가 강대상에 서서 두 팔 벌려 기도하는 모습에 반했다.
“나도 아빠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노래 부르면 사람들이 다 좋아하겠지?”
자기소개할 때도 목사님이 꿈이라고 하면 모두가 날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꿈은 아쉽게도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자 선생님이 나를 음치라며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순간 속으로 하나님께 포기 선언을 했다. 목사님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찬양할 때 음치면 웃음거리가 되기 뻔했기 때문이다.
후보 3. 여행 가이드
매일매일 여행 다니는 삶. 초등학생에게 전국 일주는 세계 통일의 길, 세계 통일은 곧 지구 정복. (실제로 같은 반 친구 중에 꿈이 지구 정복인 친구들이 꽤 있었다.) 이것 보다 더 멋진 꿈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꿈은 꽤 오래갔다. 전국 일주를 한다고 세계가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후보 4. 요리사 : 불이 무서워서 포기 (25살인 지금도 라면 물을 비커로 맞춰 끓인다)
후보 5. 축구선수 : 아빠랑 축구하면 항상 내가 이겨서 잘하는 줄 알았음.
후보 6. 모험가 : 살아남기 시리즈의 만화책을 정독하고 모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음.
후보 7. 찬양 인도자 : 찬양 집회 갔다가 리더 언니에게 반함 (음치 이슈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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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의 꿈을 찾는 여정은 멀고도 험했다. 4학년이 되면 또 자기소개를 해야 할 텐데.. 그전에 멋진 꿈을 얼른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