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완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럼 과거로도 미래로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보고 시선 하나만으로, 문 하나 통과만으로 르네상스에서 현대, 또는 고대 이집트로 넘나드는 미술관이야 말로 타임머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을 잃은 슬픔을 위로해 주던 미술관에서 저자는 어느 순간 삶의 활력을 잃고 그림들이 따분하게 보인다. 그렇게 위로받고 매일 같이 숨 쉬던 그림들에 메말라진다.
나는 문득 사랑도 그와 닮았단 생각이 든다. 그토록 뜨겁고 열렬했던 사랑도 결국은 시시해지고 무뎌지는 거다. 슬퍼졌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지만 이내 폭죽처럼 터져 결국엔 지고 마는 꽃과 같은 사랑. 나는 화려한 꽃보단 꽃이 만개할 수 있도록 늘 따뜻하게 감싸줄 햇살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건 완벽한 저자의 형도 어쩔 수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요즘 세상에 그저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이기적이지만 기도할 수밖에 없다. 고명환의 책과 함께 이 책을 읽으니 과연 내 삶의 끝은 언제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만일 4일이 주어진다면, 1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혹은 해보지 못한 호화스러운 삶을 산다고 해도 살아있음에 어떤 만족감을 선사할 것 같지 않다.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주변인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기. 나는 곧 죽을 예정이니 일방적인 고백이 될 테고 쑥스러워할 필요도, 새삼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가는 마당에 아까울게 뭐가 있을까. 넘치도록 감사하고 내 한 생에 스쳐가는 순간이라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전하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 그런데 이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네?
—— 와닿았던 문장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돼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깨알같이 적힌 이 기간에 약 천 번의 미국 역사가 반복될 만큼의 시간이 담긴 셈이다. 시선을 30센티미터 정도 옮겼을 뿐인데 그들은 수만 년의 역사를 통과해 인류, 그중에서도 이집트 문명이 궤도에 오르고 있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7천 년 전, 부싯돌로 만든 이 우아한 화살촉들은 하늘의 작은 새들을 쏘는데 쓰였을 것이다.
연주자가 마침내 손을 멈췄을 때는 아마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수많은 디테일로 채워진 그 연주를 듣는 동안 마치 수천 번의 붓놀림으로 채운 그림이 순간순간 공중에 걸려 있는 듯했다. 나는 겸손해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을 탐험해 볼 자격만을 갖춘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