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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Dec 20. 2024

내가 독서모임에 가는 이유

동굴 속 이야기 서른 하나

사람이 여러 가지 듯이 독서모임도 여러 가지다. 연애, 여행, 음주, 친목, 인맥, 위로, 출판, 커피. 난 책을 통해 내면의 타래를 조심조심 풀어내는 모임을 좋아한다.




내 안에 있는 얘기를 꺼낼 수 없고 진실함을 이해받을 수 없어 힘든 시기가 있다. 가족, 친구 누구에게든 털어놓을 순 없다. 우린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는 다름 아닌 사람이니까... 더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로 잠겨들수록 진실로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슬프고 외로워질 뿐이다.


끝을 알면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긁지 않은 꽝 복권을 손에 틀어쥔다. 내면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선을 긋는다. 참으로 젠틀한 인간이다.

젠틀이란 가식은 가볍디 가볍다




난 음악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한다. 춤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학생 시절엔 주에 한두 번씩 몇 명이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러 가곤 했다. 곧 어울리는 친구들이 늘었고 30-70명이 모여 층을 빌려 마신 뒤 춤을 추러 가곤 했다.


모임은 언제나 활기와 즐거움이 넘쳐 모임에 나왔던 사람들이 친구, 지인, 새로운 사람들을 모임에 초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내 연락처엔 어느새 약 1000명의 이름이 들어차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렸지만 난 전혀 충만해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달큼한 숨을 내쉬고 춤을 추러 가는 길은 언제나 엔돌핀이 들끓고 흥분되었다. 그러나, 모임이 끝나고 쌀쌀한 밤에 땀에 젖은 셔츠를 등에서 떼어내 바람에 말리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죽고 싶을 만큼 공허했고 외롭고 슬펐다.


난, 우린 왜 이런 의미 없는 장소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Skid Row - Wasted Time


우린 모두가 서로에게 그저 노는 관계였다. 우리의 깊이는 그것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깊이 나아가는 것을 거부한 채 서로 받을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그것이 우정이든, 연애든, 섹스든 무엇이든 간에 마음을 채워주길 바랬다. 이해되길 바랬다.


채워진 사람은 모임을 나갔다. 채움을 포기한 이들도 모임을 나갔다. 채워지지 않는 사람 깊은 이해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모임에서 순간의 즐거움으로 삶을 이어갔다.


난 군대를 갔다. 연락처를 지웠다.




이해를 요구하는 것도, 다름을 납득하라는 것도 폭력이다.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건 도리가 없다.


나는, 나와 같은 우리는 계속 혼자서 쓸쓸함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선을 긋고 젠틀하게? 독서모임이 끝난 뒤 늦은 밤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독감에 걸려 골골하면서도 난 무엇을 기대하고 이 모임에 나온 것일까? 목적이 무엇일까?


독서모임에 나갈 때마다 한 가지를 다짐한다. '받는 것을 기대 말고 주는 것만 생각하자'. 순전히 실망하기 싫어서 공허해지기 싫어서 그뿐이다. 그 너머는 생각하지 않았다.

참 쓸쓸하다




내가 독서모임에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식?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란 말이 있듯이 들을 귀가 있다면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지식과 지혜를 공중 화장실에 낀 노란 떼에서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곰곰이 생각하고 조금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걸 알지만 이해받기 위해 독서모임을 나간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함을 실감하고, 이해하는 경험으로 내 수많은 자아들 중에 하나쯤은 이해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나'에게 조금은 온화해지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난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이 온화함을 갈구하기 때문에 독서모임을 나간다.


나에게 이해받기 위해 독감에. 그리고 열에 골골한 채 한 권을 들고 버스를 탄다. 지금은 그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노는 관계가 아녔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 뿐이다. 받고 싶은 것에 몰입해 그들의 수많은 자아를 깡그리 무시하고 노는 관계로 치부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선을 긋고 노는 관계로 치부했기에 그런 관계가 된 것뿐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노는 관계'로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나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반성하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욕망을 앞세우지 말고 차분히 보고 듣고 신호에 귀기울이고 말하자고...


다음 독서모임이 기대된다. 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Skyfall Opening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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