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꼬리를 물게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그랬습니다.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첫 줄에서부터 질문을 주고 생각을 줍니다. 김지수 작가와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 혹은 삶에 관해 묻는 인터뷰 형식의 책입니다.
은유가 가득해서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책 전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그 선물을 돌려주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라네."- 이어령의 마지막수업
사랑이라는 단어도 크고, 용서라는 말도 크게 느껴집니다. 사랑과 용서 사이에서 고민한 경험이 있습니다. 원래 사랑은 아름다워서 쉽다고 생각했고, 용서는 그릇이 크고, 내면의 힘이 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렵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둘 중 무엇이 더 쉽고 어려운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에서 오래전에 내가 사랑해 주지 못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녀는 외로웠던 것이고, 사랑이 목말랐던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나였습니다.
어제 퇴근길에, 오래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의 얼굴을 잠깐 보았습니다. 우린 같은 직장에서 꽤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요. 같은 직장에서 일할 당시에 성격이 유별스러운 어떤 한 사람 때문에 잘 뭉쳤습니다. 문제의 그 한 사람은 아주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런 본인의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로 푸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먹는 것과 관련된 것에 더 심술을 부렸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누군가 커피를 들고 와서는 나누어 먹는 모습만 봐도 사나흘은 삐쳐서 눈도 안 쳐다봅니다. 자신에게는 커피를 권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요. 그러고는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다닙니다. "그깟 커피가 뭐라고 먹는 것으로 기분 상하게 하냐."는 것이 그녀의 생각입니다.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 묘한 심리전을 펼치는 그녀였습니다. 단순한 건지 솔직한 건지 헷갈리기도 했지요. 사실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은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신이 관심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비싼 선물들을 안겨 가며 편을 가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어제 만난 동료와 나는 그녀를 용서하자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말합니다. 용서는 죄를 지은 자들끼리 누가 더 많은 죄를 지었는지 싸우는 것이라고. 옛 동료와의 대화에서 우린 용서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인제 그만 그녀를 용서해 주자는 서로의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분량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그녀도 우리를 용서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시간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건만 잊히지 않고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던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의어인 것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해야 할 용서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사랑하듯이 그녀의 다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습니다. 용서는 미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주지 못했던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